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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뮤지컬렘피카 &#8211; 사이:비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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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뮤지컬렘피카 &#8211; 사이:비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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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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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김소정]]></dc:creator>
		<pubDate>Wed, 17 Jun 2026 06:47:2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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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브로드웨이에서 2024년 개막한 뮤지컬 &#60;렘피카&#62;(Lempicka)가 2026년 3월 한국에 착륙했다. &#60;디 아웃사이더스&#62;(The Outsiders), &#60;헬스 키친&#62;(Hell’s Kitchen)이 국내 상연을 앞둔 지금, 브로드웨이&#46;&#46;&#46;</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b%ae%a4%ec%a7%80%ec%bb%ac-%eb%a0%98%ed%94%bc%ec%b9%b4-%eb%a0%98%ed%94%bc%ec%b9%b4%ea%b0%80-%ea%b7%b8%eb%a6%ac%ea%b3%a0%ec%9e%90-%ed%96%88%eb%8d%98-%ec%97%ac%ec%9e%90%eb%8a%94-%eb%ac%b4%ec%97%87/">[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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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브로드웨이에서 2024년 개막한 뮤지컬 &lt;렘피카&gt;(Lempicka)가 2026년 3월 한국에 착륙했다. &lt;디 아웃사이더스&gt;(The Outsiders), &lt;헬스 키친&gt;(Hell’s Kitchen)이 국내 상연을 앞둔 지금, 브로드웨이 작품이 한국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전례 없이 짧아지고 있다. &lt;렘피카&gt;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흥행 코드로 자리 잡은 ‘동성애’와 ‘여성 예술가’라는 두 소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점과 유명 톱여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본토에서의 대중적 흥행 실패─토니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상업적 성과 부진으로 폐막이 결정되었다─와 무관하게 개막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작품은 러시아 혁명과 전쟁의 포화를 피해 가족과 함께 파리로 망명한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아르데코 미술의 여왕)의 삶을, 결혼·혁명·망명·예술적 성공·전쟁이라는 격동의 연대기를 통해 그린다. 연출은 뮤지컬 &lt;하데스타운&gt;(Hadestown)의 레이철 처브킨(Rachel Chavkin), 극본은 카슨 크라이처(Carson Kreitzer)와 맷 굴드(Matt Gould), 작사는 카슨 크라이처가 맡았다. 국내 프로덕션에서 렘피카에는 김선영·정선아·박혜나, 라파엘라에는 차지연·린아·손승연, 마리네티에는 조형균·김호영이 캐스팅되었다. &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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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e9d4a7ef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강철의 소리, 멈추지 않는 기계의 질주</h3></div></div>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large is-resized"><img decoding="async"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9_3111-355x500.jpg" alt="127613 112849 3111" class="wp-image-4146" style="aspect-ratio:0.710022188193381;width:355px;height:auto"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1"><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무대는 철로처럼 뻗어 있다. 막이 오르면 1975년 LA, 노년의 렘피카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내게 예술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은 작품 전체의 기조를 결정하는 동시에, &lt;렘피카>의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로 기능한다. 작품은 불안한 시대사조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을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시종일관 불협화음과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울리는 강철의 사운드 위에서 레치타티보에 가까운 음악이 전개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전개가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선택이 아니다. 혁명과 전쟁이라는 시대의 기계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한순간도 멈출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질주를 음향으로 번역한 결과다. </p>



<p class="wp-block-paragraph">그 중심에 마리네티의 넘버 ‘Perfection’이 있다. 이 멜로디는 오버추어(overture)에서 시작해 렘피카의 결혼식 장면으로 이어지고, 극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막의 하이라이트 넘버인 ‘Speed’ 또한 이 모티프를 변주한 노래로서 강렬한 타악으로 무장한 채 다시 등장한다. 문제는 이 넘버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정작 렘피카의 넘버를 압도해 버린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음악이 안타고니스트(적대자)의 음악에 잠식당하는 이 구조는 작곡가의 의도에 의문을 표하게 한다. 그러나 마리네티가 미래주의를 제창하며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에 입당하는 인물로서 당시 시대상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점을 떠올리면 다르게 읽을 여지가 생기기도 한다. 렘피카의 목소리가 끝내 그 강압적 박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 여성 예술가의 삶 자체가 시대에 포박되어 있었음을 음악적으로 증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넘버 ‘Perfection’ 이후, 귀족으로서의 지위와 명예, 재산과 같은 모든 것을 빼앗긴 렘피카의 남편 렘피키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을 시작하는 장면이 뒤따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마리네티의 넘버는 극 처음부터 렘피카와 렘피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파괴해 왔으며, 결국 당시 시대의 가장 극단이었던 파시즘(Fascism)까지 도달하게 된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럼에도 렘피카는 그저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법대로 맞서 저항하는 것을 선택한다. 출발한 기차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렘피카 또한 멈출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렘피카에게 정적(靜的)은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여자는 질주하는 자동차”라는 렘피카의 말이 암시하듯, 렘피카는 자신만의 화풍으로 완성한 그림으로 세계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이에 작품이 일순간이지만 정지의 순간을 배치해 놓은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렘피카와 라파엘라가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거리의 여자로 살아온 라파엘라와 혁명으로 몰락한 귀족 렘피카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거래해야 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렘피카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야 했던 것처럼, 라파엘라 역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다. 그렇기에 렘피카가 라파엘라를 모델로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특별하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두 여성이 처음으로 멈춘다. 넘버 ‘Stillness’가 흐르는 동안 작품을 지배하던 강철의 리듬은 잠시 물러나고, 두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바라볼 여유를 얻는다. 이 순간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질주만을 강요하던 시대에 대한 잠깐의 저항처럼 보인다.&nbsp;</p>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4c91abd6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기억되고 싶은 여자들</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계급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이다. 혁명으로 모든 걸 잃은 후에도 렘피카는 첫 수입으로 월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팔찌를 산다. 그 장신구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노동자가 되어야 했지만, 동시에 귀족의 정체성 역시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몰락 이후에도 귀족의 체면을 버리지 못한 채 집 안에 머무르는 남편 렘피키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가장의 역할을 떠안은 것은 여자였고, 무너진 신분의 허상을 붙드는 것은 남자였다. 그러나 렘피카는 귀족의 세계에도,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다. 혁명으로 신분을 잃었지만 그 기억을 버릴 수 없었고, 라파엘라를 통해 새로운 삶과 욕망을 발견하지만, 그곳에도 끝내 안착하지 못한다.&nbsp;</p>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full is-resized"><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width="647" height="413"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jpg" alt="news 1780673494 1653016 m 1" class="wp-image-4149" style="width:647px;height:auto"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2"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jpg 647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300x191.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150x96.jpg 150w" sizes="(max-width: 647px) 100vw, 647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런 점에서 박람회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남편과 라파엘라는 각각 렘피카에게 자신을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한쪽은 과거의 질서이고, 다른 한쪽은 새롭게 발견한 욕망이다. 그러나 렘피카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뒤이어 라파엘라마저 떠나보내는 이 삼각관계의 붕괴는 결국 렘피카라는 인물이 어떤 공동체에도 온전히 안착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낸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절망 끝에 자살을 시도한 렘피카 앞에 남작 부인이 나타난다. 이때 비싸고 화려한 팔찌가 붕대로 대체되는 연출은 인상적이다. 렘피카가 집착해 왔던 계급의 표식은 사라지고, 대신 상처만이 남는다. 죽음을 앞둔 남작 부인은 렘피카에게 말한다. “나 여기 있었음을 세상에 말해줘요. 나 기억되고 싶어요.”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질문을 드러낸다.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길 수 있는가. 렘피카에게 그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었다. 저항의 방식이었고, 자신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초상화 역시 비슷한 의미를 가졌다.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지는 대신, 자신의 얼굴과 삶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남작 부인의 부탁은 결국 렘피카가 평생 그려온 여자 초상의 의미를 다시 환기한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작품의 마지막은 자연스럽게 1975년 LA의 프롤로그로 돌아온다. 렘피카는 딸에게 자신이 죽으면 뼛가루를 멕시코의 포포카타페틀 분화구에 뿌려달라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완벽한 죽음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어 했다. 희귀하고, 아름답고, 오래도록 남는 존재. 이는 오프닝에서 자신의 그림을 모두가 원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던 태도와도 연결된다. 렘피카가 끝내 갈망했던 것은 단순한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Woman Is’의 리프라이즈 속에서 무대를 가득 채운 렘피카의 그림과 그것을 바라보는 렘피카의 모습이 보인다. 뮤지컬 &lt;렘피카&gt;는 렘피카를 성공한 화가로서 무대 위에 위치시키지 않았으며, 그녀는 붓으로 세상과 맞서며 끝내 자신의 삶을 살아냈던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녀가 신여성으로서 그린 여자들을 이야기하는 넘버 ‘Woman Is’가 전개되는 동안 작품은 그다음을 이야기하지 못한다.&nbsp;</p>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47c81439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8216;<strong>Woman is&#8217; ─ 폭발했으나 정의되지 못한 것</strong></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 문제는 넘버 ‘Woman Is’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발생한다. 레치타티보가 드라마틱한 선율로 대개 폭발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하게 감정이 터지고 멜로디가 귀를 사로잡는 순간이 렘피카가 1부의 마지막 넘버이자 극의 하이라이트인 넘버 ‘Woman Is’를 부를 때이다. 무대 위 모든 통로에 조명이 켜지고, 렘피카의 누드화가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다. 음악과 조명, 무대 이미지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이 장면은 분명 작품의 정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뮤지컬 &lt;렘피카&gt;가 끝내 관객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nbsp;</p>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700" height="480"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700x480.png" alt="스크린샷 2026 06 17 오후 3.25.34" class="wp-image-4147"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3"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700x480.png 7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300x206.pn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150x103.png 15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768x526.png 768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png 1202w" sizes="(max-width: 700px) 100vw, 700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 넘버는 렘피카가 생각하는, 그리고 이 작품이 정의하려는 ‘여자’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했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라파엘라로 표상되는 ‘여자’는 오직 렘피카에 의해 육체적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렘피카가 궁극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지, 여자로서 자신은 무엇이었는지, 작품은 그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는다. 그 결과 렘피카와 라파엘라의 사랑으로 대표되는 퀴어 서사는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서사적 밀도를 확보하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래해야 했던 두 여자의 동질감이 동성애로 번지는 과정은 그려지지만, 그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내 비워진 채로 남는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이에 뮤지컬 &lt;렘피카&gt;가 여성을 정의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렘피카에게 그림은 귀족 아가씨의 취미에서, 생계의 도구로, 다시 라파엘라라는 진정 그리고 싶은 대상으로 변모해간다. 그러나 정작 라파엘라가 떠나며 던지는 항변─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아니라 몸만을 원했다는, 뮤즈이자 대상로만 소비되었다는 그 외침─은 작품 자신을 향한 부메랑처럼 들린다. 모노클 클럽 장면은 이 문제를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수지 솔리도르의 클럽에서 펼쳐지는 레즈비언 파티는 분명 화려하며, 쇼스토퍼로서 그녀의 역할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안에 배치된 여장 남자 혹은 트렌스젠더로 추정되는 앙상블 연출이 정체조차 불분명한 채 등장한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별다른 맥락을 부여받지 못한 채 소비된다. 다양성을 전시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서사로 확장되지는 못하는 이 장면은 ‘여성과 레즈비언’에 대해 이 작품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nbsp;</p>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5ae6f041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strong>예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strong></h3></div></div>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full"><img decoding="async" width="700" height="469"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jpg" alt="127613 112847 3110" class="wp-image-4148"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4"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jpg 7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300x201.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150x101.jpg 150w" sizes="(max-width: 700px) 100vw, 700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그럼에도 &lt;렘피카&gt;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예술과 전쟁의 관계에 있다. 전쟁 중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마리네티와 렘피카를 향한 남작 부인의 이 물음은 극 안에서 마리네티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지만, 그 짧은 질문은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명제로 작동한다. 렘피카가 마주한 위기는 혁명과 전쟁이었다. 하루아침에 익숙한 세계가 무너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의 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리고 그 위기는 형태를 바꿔 반복된다. 낡은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질서가 밀려드는 오늘─AI가 인간만의 것이라 여겼던 창작의 경계를 흔드는 지금─에도, 시대가 바뀌어도 &#8216;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가&#8217;라는 &lt;렘피카&gt;의 질문은 그대로 유효하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작품 속 마리네티로부터 시작되어 렘피카에게 반복적으로 발화되는 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 바꿀 수 있는 건 네모난 캠퍼스 하나뿐”은 체념이 아니라 예술가의 믿음에 가깝다. 예술은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혁명을 저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기 존재했음을, 사랑했음을 기억하게 만들 수는 있다. 결국 &lt;렘피카&gt;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가 아니다. 예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가깝다. 전쟁과 혁명 속에서도,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시대 앞에서도 예술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라질 운명에 놓인 인간의 얼굴을 끝내 남기는 것. &lt;렘피카&gt;가 그려낸 수많은 여성 초상은 바로 그 오래된 예술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nbsp;</p>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a5668996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h2></div></div>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
<p class="wp-block-paragraph">&#8211;<br><strong>뮤지컬 &lt;렘피카&gt;</strong><br>2026.03.21~2026.06.20<br>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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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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