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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평 &#8211; 사이:비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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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평] 연극 감찰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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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홍서아]]></dc:creator>
		<pubDate>Mon, 04 May 2026 11:27:1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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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광대와 배우 사이의 줄타기가 시원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결국 그놈임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의상과 분장. 다만 감찰관을 잘 다졌으나 아예 갈아버렸다면, 작금의&#46;&#46;&#46;</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b%8b%a8%ed%8f%89-%ea%b0%90%ec%b0%b0%ea%b4%80/">[단평] 연극 감찰관</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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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wp-block-column is-vertically-aligned-center is-layout-flow wp-block-column-is-layout-flow" style="flex-basis:39%">
<figure class="wp-block-image"><img decoding="async" src="https://saicriticism.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6/05/26005131_p.gif" alt="26005131 p" class="wp-image-3027" title="[단평] 연극 감찰관 1"></figure>
</div>



<div class="wp-block-column is-vertically-aligned-center is-layout-flow wp-block-column-is-layout-flow" style="flex-basis:61%">
<p class="wp-block-paragraph">광대와 배우 사이의 줄타기가 시원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결국 그놈임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의상과 분장. 다만 감찰관을 잘 다졌으나 아예 갈아버렸다면, 작금의 우리가 더 선명히 보였을텐데…</p>



<p class="has-text-align-right wp-block-paragraph">-공연평론가・연극학 연구자 홍서아</p>
</div>
</div>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연극&nbsp;〈감찰관〉&nbsp;</strong><br>2026.04.29.–05.0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br>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 원작 니콜라이 고골 / 각색・연출 임도완</p>



<p class="wp-block-paragraph"></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b%8b%a8%ed%8f%89-%ea%b0%90%ec%b0%b0%ea%b4%80/">[단평] 연극 감찰관</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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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8211;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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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홍서아]]></dc:creator>
		<pubDate>Mon, 20 Apr 2026 07:52:3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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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2026년 3월, 국립극장 하늘극장에 리어카를 끄는 왕이 나타났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20주년 기념공연. 〈리어왕외전〉이다. 2012년 초연 이후 네 번째 재연으로 돌아온&#46;&#46;&#46;</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c%97%b0%ea%b7%b9-%eb%a6%ac%ec%96%b4%ec%99%95%ec%99%b8%ec%a0%84/">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8211;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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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2026년 3월, 국립극장 하늘극장에 리어카를 끄는 왕이 나타났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20주년 기념공연. 〈리어왕외전〉이다. 2012년 초연 이후 네 번째 재연으로 돌아온 이번 공연은 2020년 이후 약 6년 만에 프로시니엄 무대를 벗어나 3/4 아레나 무대 형식으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여 년의 시간을 버텨온 극공작소 마방진은 이번 무대에서 무엇을 갱신하고,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가?</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e934bb4f"><img decoding="async" class="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ticketimage.interpark.com/Play/image/large/26/26002310_p.gif" alt="26002310 p" title="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 2"></figure>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18475dfa"><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dca3e322"><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div></div></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908ffd68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셰익스피어의 &#8220;슬픈 옛이야기&#8221;와 2026년</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허허벌판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절규하는 늙은 왕, 리어. 권력자로서의 오만, 아버지로서의 분노, 내면이 무너져 내리는 인간과 자연의 폭력이 대표로 떠오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고선웅 연출은 ‘허공’으로 바꾸어 놓았다. 셰익스피어의 “슬픈 옛이야기”는 “허공 속에 묻힐” 노년의 씁쓸함으로 맴돈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고선웅 연출이 포착한 노년은 분명 21세기 한국에 존재하는 현실이다. 살아생전에 재산을 정리하고 자식에게 이전하지만, 정작 본인은 몸 하나 의탁할 곳 없는 노년. 한편, 외로움과 고독이 오한처럼 스미는 노년의 시간. 또 다른 한편에는 리어카를 끌며 폐지나 재활용품을 줍는 노년의 삶. 은퇴 후 또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100세 시대, 의학의 성과가 오히려 노년의 시간을 연장하는 부담으로 체감되는 저 너머의 지금. 우리의 미래.&nbsp;</p>



<p class="wp-block-paragraph">리어와 리어카의 병치는 현재 한국의 노인 현실을 과감히 드러낸다. 리어가 향하는 치킨하우스는 은퇴 후 치킨집을 개업하는 장‧노년층뿐만이 아니라 부업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한국 노년의 씁쓸함이 스며든다. 더불어 다른 노인들의 무덤을 만들고 시체를 나르는 리어의 반복된 움직임에서 마침내 60~70대 요양보호사까지도 스친다. 리어의 리어카는 노동의 도구이자 생존의 무게, 나아가 죽음을 운반하는 비참한 노년을 상징한다. 돌봄을 받고, 요양할 시기에도 여전히 노동해야만 하는 노인의 삶 말이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리어왕외전〉이 제시하는 이미지는 선명하지만, 그 이해가 곧 삶의 필연으로 체화되기보다 하나의 도식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젊은 시절 차를 몰고, 삶이 안정되면 유모차나 개모차를 끌며, 끝내는 리어카를 끄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왜 ‘노년’을 이렇게 선택적으로 구성했는가?</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65c9c86e"><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wp-image-2598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aicriticism.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43.jpg" alt="IMG＿6343" height="581" width="773" title="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 3"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43.jpg 773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43-300x225.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43-768x577.jpg 768w" sizes="(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caption>Ⓒ홍서아</figcaption></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극이 재현하는 궁핍과 소외가 2026년 노년의 보편적 풍경이라 확언하기에는 삶의 스펙트럼이 이미 세대 내부에서도 분화될 만큼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임영웅, 송가인 콘서트를 ‘피켓팅’으로 ‘겟’하며 조공하는 노년 세대, 더 이상 자식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며 자존감을 드러내는 노년 세대, 은퇴 후 40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적극적 노인의 시대인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 욜드(YOLD)세대 시대로 이미 진입했다. 이에 비해 〈리어왕외전〉은 여전히 2012년 시니어의 정서이자 헌신 후, 빈곤과 궁핍, 고독과 소외라는 단일한 전통적 프레임을 작품 전체의 분위기로 삼는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이 지점이 재공연 작품이자 레퍼토리인 〈리어왕외전〉에서 아쉬운 점이다. 고선웅 연출이 리어왕을 통해 제시한 노년의 삶은 한 단면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노년의 다층적 시간과 감각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초점이 곧 전체인 것처럼 제시되는 순간, 삶의 복합성과 다층성이 확장되기보다, 특정한 정서로 수렴되는 인상을 남긴다.&nbsp;</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33d367e2"><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970ba7ac"><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div></div></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97c13bc3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오락적 리듬이 남긴 2%의 간극</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영석 배우의 리어. 이영석 배우는 막내딸을 편애하는 아버지를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 철없는 아빠. 권력과 유산을 내세우며 자식에게 큰소리치고 싶지만, 탈탈 털린 아버지, 이미 근육이 빠진 사지육신을 끌기도 힘든 할아버지. 관절이 이미 닳고 닳아 종종걸음치고, 초라해져 가는 리어를 묵직하게 연기한다. 특히 이영석 배우는 춤, 노래 연기뿐만이 아니라 호기롭게 등장한 첫 장면부터 점차 굽어가는 등, 걸음의 변화를 점차 드러내며 쇠락하는 노년의 신체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리어를 제일 닮은 딸, 코딜리어는 아빠를 닮아 자비 없는 솔직함으로 뼈를 때리며 하며 청순가련한 막내딸의 이미지를 떨쳐낸다. 그녀는 공주라는 금수저를 버리고 변두리에서 노동하는 여성으로 재탄생한다. 이지현 배우는 이 직설화법의 코딜리어를 자칫 철없이 보일 위험에서 선택에 책임감이 있는 여성으로 구해낸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각색과 연출을 담당한 고선웅은 특유의 재치로 장황한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간결하게 정리한다. 또한 종횡무진 무대를 뛰는 배우들의 동선에서 그의 연출적 기지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동선을 겹쳐 다른 공간을 한 무대에 겹치고 생략하며 장면을 응축하는 고선웅식 미장센은 역시 보는 재미를 더한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장면을 응축, 압축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덜어지면서 사건의 밀도는 헐겁게 얽힌다. 그 결과, 개별 장면의 인상은 남지만, 이야기의 긴장과 축적은 흐릿해진다. 한 예로 글로스터 백작의 고문 장면을 들 수 있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원작에서 이 장면은 아들의 탐욕을 보지 못한 어리석은 아비의 눈을 도려내는 패륜범죄 장면이다. 아들 에드먼드 대신 리건 부부가 글로스터에게 행하는 폭력은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의 라비니아 장면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작품 중 잔인한 장면으로 꼽힌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이 장면을 〈리어왕외전〉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없는 ‘침묵의 폭력’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압축된 긴장으로 응축되기보다, 늘어진 정적으로 남는다. 그 결과, 이 장면은 잔혹함을 강화하기보다 감각을 무디게 한다. 자녀들의 패륜과 글로스터에 대한 연민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한 채 남기 때문이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85547f0d"><img decoding="async" class="wp-image-2600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aicriticism.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6.jpg" alt="IMG＿6326" height="581" width="773" title="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 4"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6.jpg 773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6-300x225.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6-768x577.jpg 768w" sizes="(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caption>Ⓒ홍서아</figcaption></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이번 〈리어왕외전〉의 네 번째 무대는 앞선 프로시니엄 무대와 달리 3/4 아레나 형태로 이동한다. 그러나 동선은 여전히 프로시니엄 방식에 머물러 있다. 무대 형태의 갱신은 오히려 배우들의 동선과 발성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공간에 맞게 소리가 열리지 못하고, 막히다 보니 관객에게 대사와 에너지가 온전히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사의 불분명한 전달력과 아직 프로시니엄 동선이 잔존 하는 무대는 고선웅 연출의 특징인 생략, 응축, 압축하는 미장센을 오히려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nbsp;</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f75f7d9f"><img decoding="async" class="wp-image-2599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aicriticism.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8.jpg" alt="IMG＿6328" height="581" width="773" title="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 5"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8.jpg 773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8-665x500.jpg 665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8-150x113.jpg 15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8-300x225.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5/05/IMG＿6328-768x577.jpg 768w" sizes="(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caption>Ⓒ홍서아</figcaption></figure>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5d561e03"><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eb464c73"><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div></div></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a7d13adb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연극이라는 광야에서 20년을 살아남은 마방진</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지금의 대학로는 작품은 남는데, 연극 세계는 남기는커녕 갈 곳조차 마땅치 않다. 연출, 배우, 디자이너 등 개인은 남지만, 극단이라는 공동체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물론 명맥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극단도 있다. 반면 극단은 있지만 지속된 작업은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p>



<p class="wp-block-paragraph">&nbsp;2000년대 이후 대학로의 제작 환경이 프로젝트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오랜 시간 축적된 미학을 유지해 온 극단의 작업은 오히려 드문 사례가 되고 있다. 프로젝트 시스템은 현실적으로 맞는 방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연극의 시간’이 쌓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극공작소 마방진의 20주년은 더욱 반갑고, 또한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연극이라는 광야에서 20년을 버텨온 시간은 이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요구한다. 그동안 축적된 실험과 미학, 견고해진 연출과 배우의 호흡, 두터워진 관객층은 자연스럽게 더 높은 기댓값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곧 갱신의 압박으로 되돌아온다. 쌓아온 것이 있기에 이번에도 새로워야 한다는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극공작소 마방진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무게와 부피를 지닌 채 무대 위에 서 있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마방진의 20주년 레퍼토리로 돌아온 〈리어왕외전〉은 바로 이러한 ‘축적된 미학’과 ‘갱신의 요구’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20년 동안 마방진의 시간은 연출과 배우라는 점(點)들과 극단이라는 선(線), 작품이라는 면(面)으로 그들의 존재를 올곧게 입증한 바 있다. 그 견고함과 활력 앞에 ‘갱신’의 압박을 더 하는 것이 무례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마방진이 마주한 이 긴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보인다. </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8199d5e3"><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d3dc5603"><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div></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연극&nbsp;〈리어왕외전〉&nbsp;</strong><br>2026.03.20.–04.12. 국립극장 하늘극장<br>극공작소 마방진 /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각색・연출 고선웅</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c%97%b0%ea%b7%b9-%eb%a6%ac%ec%96%b4%ec%99%95%ec%99%b8%ec%a0%84/">리어카로 수렴된 비극 &#8211; 극공작소 마방진〈리어왕외전〉</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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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8211;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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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진]]></dc:creator>
		<pubDate>Sat, 18 Apr 2026 14:53:18 +0000</pubDate>
				<category><![CDATA[비평]]></category>
		<category><![CDATA[연극]]></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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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이진]]></category>
		<category><![CDATA[칼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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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부성(父性)의 사전적 의미는 ‘남성이 아버지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모성(母性)의 사전적 의미 또한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46;&#46;&#46;</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c%97%b0%ea%b7%b9-%ec%84%b8%ec%9d%bc%ec%a6%88%eb%a7%a8%ec%9d%98%ec%a3%bd%ec%9d%8c-%ea%b7%b8%ec%9d%98%ec%96%b4%eb%a8%b8%eb%8b%88/">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8211;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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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부성(父性)의 사전적 의미는 ‘남성이 아버지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모성(母性)의 사전적 의미 또한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으로 거의 동일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본능’이란 단어다. 본능은 사전에서 ‘어떤 생물체가 태어난 후에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이라 설명한다. 부성과 모성 모두 후천적으로 학습되거나 사회적으로 강요받은 것이 아닌, 타고난 감정이라 정의한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극단적인 모성과 부성을 다룬 작품들은 많다. 영화 〈마더〉, 〈케빈에 대하여〉 등 악(惡)을 행한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혹은 영화 〈테이큰〉처럼 잃어버린 딸을 구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렇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외부 요인과 갈등하거나, 자기 자신과 내적 갈등하는 부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형태·장르로 변주되고 있다. 무대극 또한 그렇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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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2025년 1월 7일부터 3월 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버지이자 주인공 ‘윌리 로먼’의 부성을 다뤘다. (해당 작품은 (유)쇼앤텔플레이·(주)T2N미디어가 제작했으며, 서울 공연을 마친 후 2025년 3월부터 5월까지 부산·대구·용인·인천·수원·의정부에서 전국의 관객을 만났다.)</p>



<p class="wp-block-paragraph">국립극단이 제작하고 국립극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한 연극 〈그의 어머니〉초연은 2025년 4월 2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됐다. 2026년 명동예술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그의 어머니〉 재연은 4월 16일부터 5월 17일까지 다시 관객을 만난다. 〈그의 어머니〉는 어머니이자 주인공 ‘브렌다 카포위츠’의 모성을 다뤘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서 밀러가 집필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에 발표됐고, 에반 플레이시 〈그의 어머니〉는 2008년에 쓰였다. 이렇듯 두 작품 사이엔 60여 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음에도 시간을 뛰어넘는 공통된 정서가 존재한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큰아들에 대한 뒤틀린 집착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작품 모두 가족극을 표방했지만,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장남(長男)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과 애증을 깊게 다루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자식들이 형제 딱 두 명인데, 작은아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는 등장 장면뿐 아니라 주인공 윌리·브렌다의 마음속 무게감 또한 그렇다는 뜻이다. 뜻대로 자라주지 않았더라도, 모자란 자식일지라도 큰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대하게 되는 정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극의 윌리·브렌다는 가족 전체를 지키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큰아들을 가장 신경 쓴다. 윌리·브렌다는 가장, 즉 가족의 리더이기도 하다.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고, 강하게 살아야 하지만 마음은 약하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끊임없는 압박을 견디고 이겨내던 그들의 광기(狂氣)는 폭발한다. 그들이 미친 이유는, 큰아들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연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a179b690"><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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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32b938bc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Ⅰ. 환각(幻覺)이 된 환상(幻想)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2025)</h2></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윌리 로먼은 늙은 세일즈맨이다. 윌리는 60대의 나이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고된 외판원 일을 하고, 집 대출금을 25년째 갚는 성실한 가장이다. 하지만 그에겐 도덕적 결함이 있다. 과거에 출장차 갔던 보스턴에서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br><br>아들임에도 ‘별’, ‘헤라클레스’ 같단 말이 나올 정도로 외모도 훤칠하고, 촉망받는 풋볼 선수였던 장남 비프는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다. 수학 시험에서 낙제해 대학 진학이 위태로웠던 비프는 그 충격으로 운동도 그만두고, 전도유망하던 자기 자신을 놔버린다. 현재, 서른네 살이 될 때까지 안정적인 직업을 못 구한 비프는 도벽도 고치지 못했다. 빛나던 과거는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5dcd9984"><img decoding="async" class="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image.xportsnews.com/contents/images/upload/article/2025/0131/1738288446806327.jpg" alt="1738288446806327" title="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8"><figcaption>사진 제공: 사진 출처 :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br></figcaption></figure>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01bafac0"><br></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bb6ce9ee">〈세일즈맨의 죽음〉은 찬란했던 과거와 희망 없는 현재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현재의 비참함을 강조한다. 희망은 단지 재산이나 직업의 유무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다. 윌리는 큰아들 비프가 스포츠 스타가 될 거라 기대했다. 자신이 버는 돈과 차원이 다른 천문학적인 거액을 벌어다 줄 것이라 꿈꿨기에 그를 더 우러러봤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순진하고, 낙관적이고, 어리석은 희망과 숨 막히는 기대는 비프를 완전히 엇나가게 했다.</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654e0002">로먼 가의 가족 구성원은 아내 린다, 큰아들 비프, 작은아들 해피다. 윌리는 린다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늘 자식들 걱정을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 건 큰아들 비프다. 작은아들 해피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린다 또한 아내로서, 형제의 어머니로서 존중하거나 아낀다기보다 그냥 사는 것처럼 보인다. 린다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겼다면 부정을 저지르고 큰아들에게 들키는 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e0f1dd0b">윌리는 미식축구 에이스였던 비프를 남자 대 남자로서 동경했고, 불륜을 들켰을 땐 아버지로서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감정은 아내 린다에게 먼저 느껴야 하는 것이다. 내연녀에겐 새 스타킹을 사주는 그는 낡은 스타킹을 꿰매는 린다를 보며 짜증을 낸다. 강자 앞에선 약해지고, 약자 앞에선 강해지는 남성의 속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윌리에게 아내 린다는 약자고, 아들이지만 잘난 남자를 대하듯 우러러보고 희망을 걸었던 비프는 철저한 강자였다.</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4df624dd">그는 또한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부정이 촉망받던 비프를 망가트렸단 걸 알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비프는 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간 자리에서 만년필을 훔쳐서 도망치는 기행을 저지르고, 집에선 아버지에게 수십 년간 쌓인 원망과 분노를 쏟아낸다. 그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실망하고, 인생도 포기하기 시작했던 순간은 윌리의 외도를 본 날부터였다. 하지만 그건 ‘계기’일 뿐, 비프는 내면에 차곡차곡 스트레스를 쌓으며 엇나가고 있었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e29120d6"><img decoding="async" class="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501/01.39155266.1.jpg" alt="01.39155266.1" title="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9"><figcaption>사진 제공: 사진 출처 :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br></figcaption></figure>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3b172eb6"><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div></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일용직을 전전하던 비프는 감옥 생활도 했었고, 현재도 도움을 구하러 간 중요한 자리에서 만년필을 훔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위태롭다. 자신을 시급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라 자조하는 비프는 아버지가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단 걸 알고도 남처럼 냉정하다. 하지만 비프는 명백히 윌리의 아들이다. 윌리 또한 비프처럼 마음의 병을 오래 앓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덕적 결함과 정신적인 불안이라는 유산(遺産)을 물려줬다.</p>



<p class="wp-block-paragraph">윌리는 생전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형 벤의 환각을 오랫동안 봐왔다. 한땐 꿈이자 희망이었던 비프가 자신은 시급 1달러짜리라며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준 후, 윌리는 알래스카에서 2만 달러를 벌었단 벤의 환각을 보곤 홀린 듯 따라간다. 이미 세상을 떠난 형을 쫓아간다는 건 죽음을 뜻한다. 윌리는 자동차 사고를 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가족에겐 거액의 사망 보험금이 지급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비프가 스포츠 스타가 돼 벌어준 돈도 아니고, 형처럼 사업에 성공해 번 돈도 아닌, 목숨과 맞바꾼 돈으로 윌리는 집 대출금을 죽어서야 전부 갚는다. 아버지이자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가족들에겐 슬픔이 드리웠지만, 벤의 환각을 춤추듯 경쾌하게 따라가는 윌리의 마지막은 행복하다. 비프의 분노에서 ‘그 애가 날 완전히 싫어하진 않는다’는 걸 읽었고, 드디어 아버지로서 장남에게 돈이라는 유의미한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었다.</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0e2fafee"><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7478f69c"><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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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4ddbb824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Ⅱ. 연약한 몸, 인간 방패가 되다 – 연극 〈그의 어머니〉(2025)</h2></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브렌다 카포위츠는 집이란 감옥에 갇혔다. 열일곱살 큰아들 매튜가 하룻밤 사이 여학생 세 명을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가택 연금을 당한 매튜와 함께 집에 구금된 브렌다는 큰아들을 24시간 감시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녀는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둘째 아들 제이슨도 필사적으로 지킨다. 가족들의 집 앞엔 기자들이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다. 일상생활도 못 하는 자신과는 달리 아직 아홉 살인 제이슨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 매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제이슨은 형과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엄마의 이상한 행동,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이해 못 한다. 그래도 브렌다는 제이슨을 매튜로부터, 황색 언론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려 발버둥 친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0d288ac2"><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2684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40913540447903175.jpg" alt="〈그의 어머니〉(2025) 공연 사진" height="450" width="651" title="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10"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40913540447903175.jpg 651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40913540447903175-300x207.jpg 300w" sizes="auto, (max-width: 651px) 100vw, 651px" /><figcaption>사진 제공: 국립극단</figcaption></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연극 〈그의 어머니〉의 핵심은 브렌다가 느끼고 보여주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감정과 표정들이다. 그녀는 분명히 죄를 저지른 매튜에게도 아직 모성을 갖고 있다. 반대로, 도저히 견디기 힘든 추악한 짓을 저지른 아들에게 엄마로서 분노와 증오 또한 들끓는다. 매튜가 ‘남자’로서의 욕구를 내보이며 죄인이 됐단 사실을 알았을 때, 브렌다는 그와 한집에 머물러야 하는 ‘여자’로서도 아들을 날카롭게 경계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브렌다가 매튜에게 느끼는 증오심은 집 안에서만 표현된다. 매튜는 여학생들의 영혼과 인권은 파괴했지만, 어린 남동생은 진심으로 아낀다. 브렌다는 함께 게임을 하는 형제, 자기 옷을 동생에게 주는 매튜를 감시하고 억압하며 통제한다. 가택 연금을 당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매튜를 제이슨에게서도 분리하며, 마지막 청정 구역만은 지키려는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 강한 엄마지만, 브렌다는 매튜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본능적으로 꺼리며 움츠러든다. 매튜의 여자 친구인 제시카가 집에 찾아와 그를 만나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순간도 불편하다. 성범죄를 저지른 남자인 매튜가 또다시 뭔 일을 할 까봐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이처럼 브렌다는 여자로서, 엄마로서 매튜를 절대 믿지 않는다.</p>



<p class="wp-block-paragraph">브렌다는 매튜를 증오한다.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고, 아직 어린 제이슨의 앞길도 막고, 무엇보다 엄마로서 오랫동안 헌신한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아들들을 지키려 애쓰던 브렌다는 매튜에게 지독하게 솔직해서 이기적인 분노를 터트린다. 너한테 남은 건 이젠 증오밖에 없고, 제이슨만은 잘 키우고 싶다고.</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브렌다의 감정적 폭발은 집 안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집 밖, 즉 남들 앞에선 브렌다는 여느 어머니처럼 아들을 보호한다. 현관에서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갔을 뿐인데, 브렌다는 광기에 가까운 처절한 모성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말 그대로 온 몸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뭐라도 캐내려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 앞에서 브렌다는 옷을 벗고 나신을 드러낸다. 집 안을 향하고, 아직 어린 제이슨을 겨누는 플래시 앞에서 브렌다는 절규한다. 차라리 날 찍으라고. 그녀의 몸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는 카메라의 섬광에 브렌다는 기꺼이 수백 번을 찔리며 피눈물을 흘린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c453da7c"><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2974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png" alt="hismother" height="450" width="651" title="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11"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png 651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150x104.png 15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300x207.png 300w" sizes="auto, (max-width: 651px) 100vw, 651px" /><figcaption>사진 제공: 국립극단</figcaption></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성범죄자 아들의 어머니가 기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단 건 황색 언론이 물어뜯기 좋은 가십이다. 그녀의 행동은 감정적인 충동과 일탈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한편으론 일부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위일 수도 있겠다. 매튜에서 브렌다로 사람들의 이목이 완벽하게 쏠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잠시나마 아들을 지켰다.</p>



<p class="wp-block-paragraph">장면과 배우의 연기는 파격적이고 폭발적이지만, 무대 안쪽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뒷모습 만을 노출한 계산된 연출과도 맥이 통한다. 내용과 연출 모두 감정적으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치밀하게 짜였기 때문이다. 1막 엔딩인 이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아들의 성(性) 문제에 연루된 엄마들은 상상 못 할 행동을 종종 하니 말이다. 모성이 아름답다는 건 그저 환상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처럼 1막 엔딩에선 브렌다 홀로 기자들 앞에 서지만, 2막 엔딩에선 그녀와 매튜는 함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넌 내 아들이잖아’라며 그와 함께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온몸으로 견디는 브렌다. 건축 디자이너인 그녀는 자신이 만든 가정을, 자식을 흠 없이 완벽하게 설계하는 덴 실패했다. 하지만 집 밖에서만큼은 세상으로부터 아들들을 보호하려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여자, 어머니, 그리고 평범하고 입체적인 인간이었다.</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39e477a0"><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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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f424a4a0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Ⅲ.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 속박을 털어내는 몸짓</h2></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모두 가족을 지키기 위한 부모의 처절함이 춤인지 몸부림인지 모를 기묘한 움직임으로 표출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윌리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어머니〉는 1막 엔딩에서 부성과 모성의 광기가 클라이막스에 달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세일즈맨의 죽음〉 윌리는 알래스카에서 거액을 번 형 벤의 환각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쫓아간다. 윌리는 가족에게 자신의 사망 보험금을 주기 위해 교통사고를 내며 삶을 끝낸다. 더없이 비참한 결말이지만, 춤추듯 가볍게 형의 환상과 돈을 따라가는 윌리의 뒷모습은 어린아이 같다. 윌리의 첫 장면은 일을 마치고 고된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의 발걸음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삶, 즉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죽음 같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살기 위해 떠나는 모습과도 같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의 어머니〉 브렌다가 집 앞을 진 치고 있는 기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 동작과 연기는 행위예술 같다. 행위예술(行爲藝術)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이나 내용을 신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을 뜻한다. 브렌다가 세상에 표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브렌다는 피해 여학생들을 원망하고,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욕하고, 언론에 유리하게 보일 행동을 연출하는 변호사 로버트에게 선 넘지 말라고 경고도 하는 평범하고 이기적인 엄마다. </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그녀는 성범죄자인 아들이 결백하다거나,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연히 만난 피해 여학생의 어머니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걸 알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큰아들 매튜가 아닌 가족과 일상, 그리고 집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장면 모두 배우에겐 연기력과 무대 내공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춤이나 행위예술이 아닌 몸부림에 가까운 기괴한 모습은 아들을, 나아가 가족 전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건 지키려는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털어내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몸부림을 통해 자기 자신을 털어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세일즈맨의 죽음〉 윌리는 세상을 떠난 형의 환상을 따라가며 목숨을 버렸다. 〈그의 어머니〉브렌다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스스로 사냥감이 되어 여성의 존엄성을 잠시 포기하고 가족을 지켰다. 가족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떳떳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고, 화살처럼 날아드는 플래시 세례에 맞서 기꺼이 인간 방패가 되는 모습에선 처절함을 뛰어넘은 숭고함이 보인다. 윌리 로먼과 브렌다 카포위츠를 보며 부모님을 떠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p>



<p class="wp-block-paragraph">가족은 가장 가깝지만, 때론 가장 멀게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존재다. 윌리와 브렌다 또한 이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과 〈그의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와 어떻게 공존할지도 사유하게 하는, 서늘한 경종을 울린 작품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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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연극 〈그의 어머니〉</strong><br>2025.04.02.–04.19. 국립극장 달오름극장<br>국립극단 / 원작 에반 플레이시 / 연출 류주연</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연극 〈세일즈맨의 죽음〉</strong><br>2025.01.07.–03.03.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br>원작 아서 밀러 / 연출 김재엽</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c%97%b0%ea%b7%b9-%ec%84%b8%ec%9d%bc%ec%a6%88%eb%a7%a8%ec%9d%98%ec%a3%bd%ec%9d%8c-%ea%b7%b8%ec%9d%98%ec%96%b4%eb%a8%b8%eb%8b%88/">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8211;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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