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문 남창전집] 우리는 왜 전통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파격의 아이콘, 국악계 레이디가가, 힙한 K-민요의 아이콘, 국악 이단아, 포털에서 이희문을 검색하면 나오는 그의 수식어이다. 경기민요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음악 세계는 비주얼적인 파격과 함께 국악의 표정을 만들어 주었다. 국악은 한동안 그들만의 리그로 보였다. 접근도 어려웠을뿐더러 세대에 따른 거부감도 일정 기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대중에게 국악은 예술가의 예술 세계나 개성보다는 낡은 것, 지난 것이라는 뭉뚱그려진 덩어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희문의 등장은 관습적 음악 완성의 문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서사를 전면에 드러내어 경기민요를 뒤집어 보게 했다. 그에 관한 찬사는 이미 넘쳐나고 있으니 여기에서까지 언급하지는 않을테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26년 4월 15~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 이희문의 〈남창전집〉에서 다른 면모를 발견했으니까. 이 글은 이희문의 행보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나왔음을 밝힌다.
![[이희문 남창전집] 우리는 왜 전통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1 26002518 p](https://i0.wp.com/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5/26002518_p.gif?resize=375%2C500&ssl=1)
사실 이희문은 무대에서 여성성을 드러내는 드렉퀸(drag queen)의 자신과 MBTI가 I라는 평소 모습의 괴리를 ‘이중생활’이라 표현하면서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했다. (출처:EBS_story 예술가의 보이스) 시작은 경기민요를 잘 드러내기 위한 욕망으로 코스튬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든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단정한 머리에 상투를 틀고 흐트러짐 없는 갓을 쓰고 하얀 도포를 입은 이희문의 페르소나가 있다. 역시 경기민요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난 모습이다. 〈남창전집〉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공연 전반부는 이희문의 노랫가락으로 채워졌다. 알려진 노랫가락의 사설을 조밀하게 서사로 엮어냈다. “동창이 밝았느냐”는 남구만이 지은 옛 시조시로 이를 노랫말 삼아 시조창, 무가, 민요, 가곡 등으로 부른다. 특히 남창가곡 평조 초수대엽인 가곡의 첫 곡이기 때문에 문인음악으로서의 대표성을 띈다. 그는 “동창이”를 시작으로 시조창과 노랫가락의 경계를 날카롭게 가로지르며 어두운 조명 아래 무반주에 부른다. 아마도 이 세 장르는 뿌리가 같거나 경계 따위는 없었던 노래였을지 모른다. 평소 화려한 의상과 진한 화장으로 가린 경기민요의 민낯은 실은 이런 모습이란 걸 의도하고 싶었을까.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보이는 것에 대한 절제를 통해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 곡에서부터 꽤 긴 시간 동안 채운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의미를 알아주든 말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무대에 선 가수의 몫이다.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 한 노랫가락
단소의 능청스런 농음(弄音)으로 한국적인 선을 만들어 낸다. 서양음악화 된 악기들 속에서 가장 보수적인 악기는 아무래도 피리와 단소 같다. 관악기의 숨으로 빚어내는 시김새를 내지 않으면 마치 국적을 잃는 것과 같다. 단소와 경기민요의 흐드러지는 소리가 서로 기대었다가 끌어당기기도 어울리기도 하며 선(線)의 미를 창출해 낸다. 누군가 단소와 노래에 줄[선]을 달았다면 소리의 뒤엉킴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지 모른다.
대뜸 생황이 들어와서는 조화로운 선 위에 들이댄 평균율에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평행선을 그을 수 있나, 노랫가락의 오묘한 맛과 단소의 풍류를 물리적으로 말하면 국악이 가진 음고가 평균율에 비해 약간 좁은 사이가 있고, 약간 벌어진 사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황은 그 간격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려주면서도 음색으로 이해하기엔 폭력적이었다. 약간의 허무감으로 자리해 있던 찰나에 단소 연주자가 음고를 생황에 맞춰낸다. 그도 귀가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음고를 조절하지 못하는 생황이 맞춰 낼 수는 없으니 결국 맞춰내는 건 사람이었다. 그 사이를 요리조리 노래하는 이희문의 모습이 하이힐을 신은 모습과 겹친다. 결국 변해가는 음악, 세상의 주류에 본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건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유연성일까. 안도감과 더불어 허탈한 마음이 드는 가운데 노랫가락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은 무가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은 서울굿에서 나왔다. 굿판에서 무당이 각각의 신을 부르고 신을 놀리는데 부르던 노래가 점차 퍼져 전문 가창자가 부르는 통속민요로도 부르게 되었다. 창부타령은 〈남창전집〉답게 경기민요를 하는 이채현, 정준필 두 젊은 남자 민요꾼이 무대를 채웠다. 장성한 청년의 풍채에 색동옷을 입고 간들거리는 창부타령을 부른다. 기존의 여성 민요에 익숙한 기억과 앞에서 펼쳐지는 감각이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더구나 아기가 쓰는 돌모자 ‘굴레’를 쓰고 나오다니, 자기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 걸까. 걱정도 잠시 수려한 소리를 품어내는 소리꾼들의 재간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포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구나.
노랫가락과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창부타령의 모든 사설을 엮어내려는 듯 긴 시간 부르면서도 나름의 의도된 서사가 있다. 마치 판소리의 예술성을 지향하는 듯 보였는데 이것의 ‘전집(全集)’의 의미일까. 판소리는 이면에 따라 장단과 조가 바뀐다. 그러나 창부타령은 긴 시간 반복된 굿거리장단과 선율이 집중력을 떨어뜨려 팬심으로 듣기에는 힘에 부친다. 서사의 맥락이 음악적으로 다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경기민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무대였지만 이야기를 엮으려면 더 많은 음악적 이면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희문 남창전집] 우리는 왜 전통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2 7249](https://i0.wp.com/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5/7249.jpg?resize=700%2C466&ssl=1)
마지막 무대에서는 세 창자가 모두 무대에 선다. 선비에서 무당으로 변신한 이희문은 서울굿의 한 장면을 재연한 듯 관객석으로 내려가 조우한다. 서울굿에서 가져온 화려함과 열린 마당의 관계성을 폐쇄된 극장에서 시도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기원할 것이 없는데 돈을 꽂아주는 기묘함과 이희문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탄탄한 팬층의 호응이 맥락을 압도하여 부러울 지경이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희문은 너무나 잘 안다. 또 이것이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경기민요의 저력이기도 하다. 이를 아우르는 여신동의 무대는 슴슴한 절편 같았다. 화려한 색동의 창자들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뽕짝과 클래식 사이를 과하게 넘지 않는 절제됨이 있다.
여기서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해보려 한다. 먼저 여성 창자가 많은 경기민요에서 남성 창자의 의미란 무엇인가. 국립국악원 민속단 정기 공연에 남성 창자를 한 명도 볼 수 없었던 충격이 얼마 되지 않아, 〈남창전집〉에선 남성 민요 창자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국악이라는 소수의 음악, 게다가 더 작은 범위의 경기민요 남성 창자 수가 적은 만큼 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경기민요의 남성 창자에 대한 편애는 남녀차별이나 갈라치기의 문제라기 보다는 너무 없어서 마치 DNA를 이용하여 되살린 구석기시대 공룡 같다. 그저 잘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이희문이 무대에서 강조한 것처럼 경기민요가 후대로 잘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창전집〉이 이루어진 것 같다.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이희문 남창전집] 우리는 왜 전통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3 7250](https://i0.wp.com/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5/7250.jpg?resize=700%2C466&ssl=1)
가벼움을 견디지 못하는 속성, 진짜에 대한 갈구
왜 우리는 자꾸 전통을 버리지 못하는가. 왜 자꾸 회귀하는가. 이희문뿐만 아니라 장담컨대 전통음악으로 출발한 이들의 음악 세계는 대략 ‘캐논’과 ‘산조’ 두 가지가 대립한다. 캐논으로 돈을 벌면서도 독주회는 산조를 한다.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나는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여전히 교수가 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인가?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또는 교육 방식에서 이 현상을 분석하자면 끝도 없이 비참하다. 다만 이들을 변호하는 차원에서 발견된 두 가지 면모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짜 내 음악은 무엇인가’ 진짜에 대한 갈구이다. 구전심수의 전통음악 학습을 거친 이들은 퓨전 사운드에 대한 가벼움과 전통 성음의 깊음에 대한 차이가 일종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음(聲音)의 완성은 시간이 축적한 나의 공력이다. 스스로 깊이의 강요를 통해 자기충족을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이희문 역시 무대 위 독특한 차림의 나에서 어떤 자신감을 얻는다고 했다. 여기에 전통은 내가 의식해 만든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원래 추구했던 음악(또 다른 나)를 보여준다. 전통 역시 나의 다른 페르소나(가면)이다.
‘인정욕구’,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같은 계통에서의 인정이 자신을 충족시킨다. 누구나 예술가들이 갖는 딜레마이다. 25현 가야금으로 캐논을 연주해도 가야금 산조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특히 〈남창전집〉의 첫 장면은 여러모로 이희문의 인정욕구가 발휘된 작품이다. 위 두 가지는 예술성의 획득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발현되는 것이다. 이미 음악의 수련 방식에서 이상향이 높은 걸 어쩔 것인가.
이희문의 어떤 공연 보다도 〈남창전집〉에서 속내를 다 보여 준 게 아닌가 싶다. 눈치 볼 것 없이 한 예술가의 내적 추구미를 가식 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둔 파격이라는 발품으로 내 편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강력한 용기를 내게 한다. 이렇듯 여장남자와 선비, 파격과 절제, 양극단을 횡단하는 이희문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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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남창전집〉
2026.04.15.–04.16.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이희문컴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