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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선영 &#8211; 사이:비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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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공연예술평론웹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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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선영 &#8211; 사이:비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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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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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김소정]]></dc:creator>
		<pubDate>Wed, 17 Jun 2026 06:47:2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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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브로드웨이에서 2024년 개막한 뮤지컬 &#60;렘피카&#62;(Lempicka)가 2026년 3월 한국에 착륙했다. &#60;디 아웃사이더스&#62;(The Outsiders), &#60;헬스 키친&#62;(Hell’s Kitchen)이 국내 상연을 앞둔 지금, 브로드웨이&#46;&#46;&#46;</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b%ae%a4%ec%a7%80%ec%bb%ac-%eb%a0%98%ed%94%bc%ec%b9%b4-%eb%a0%98%ed%94%bc%ec%b9%b4%ea%b0%80-%ea%b7%b8%eb%a6%ac%ea%b3%a0%ec%9e%90-%ed%96%88%eb%8d%98-%ec%97%ac%ec%9e%90%eb%8a%94-%eb%ac%b4%ec%97%87/">[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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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브로드웨이에서 2024년 개막한 뮤지컬 &lt;렘피카&gt;(Lempicka)가 2026년 3월 한국에 착륙했다. &lt;디 아웃사이더스&gt;(The Outsiders), &lt;헬스 키친&gt;(Hell’s Kitchen)이 국내 상연을 앞둔 지금, 브로드웨이 작품이 한국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전례 없이 짧아지고 있다. &lt;렘피카&gt;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흥행 코드로 자리 잡은 ‘동성애’와 ‘여성 예술가’라는 두 소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점과 유명 톱여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본토에서의 대중적 흥행 실패─토니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상업적 성과 부진으로 폐막이 결정되었다─와 무관하게 개막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작품은 러시아 혁명과 전쟁의 포화를 피해 가족과 함께 파리로 망명한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아르데코 미술의 여왕)의 삶을, 결혼·혁명·망명·예술적 성공·전쟁이라는 격동의 연대기를 통해 그린다. 연출은 뮤지컬 &lt;하데스타운&gt;(Hadestown)의 레이철 처브킨(Rachel Chavkin), 극본은 카슨 크라이처(Carson Kreitzer)와 맷 굴드(Matt Gould), 작사는 카슨 크라이처가 맡았다. 국내 프로덕션에서 렘피카에는 김선영·정선아·박혜나, 라파엘라에는 차지연·린아·손승연, 마리네티에는 조형균·김호영이 캐스팅되었다. &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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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e9d4a7ef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강철의 소리, 멈추지 않는 기계의 질주</h3></div></div>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large is-resized"><img decoding="async"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9_3111-355x500.jpg" alt="127613 112849 3111" class="wp-image-4146" style="aspect-ratio:0.710022188193381;width:355px;height:auto"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1"><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무대는 철로처럼 뻗어 있다. 막이 오르면 1975년 LA, 노년의 렘피카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내게 예술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은 작품 전체의 기조를 결정하는 동시에, &lt;렘피카>의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로 기능한다. 작품은 불안한 시대사조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을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시종일관 불협화음과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울리는 강철의 사운드 위에서 레치타티보에 가까운 음악이 전개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전개가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선택이 아니다. 혁명과 전쟁이라는 시대의 기계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한순간도 멈출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질주를 음향으로 번역한 결과다. </p>



<p class="wp-block-paragraph">그 중심에 마리네티의 넘버 ‘Perfection’이 있다. 이 멜로디는 오버추어(overture)에서 시작해 렘피카의 결혼식 장면으로 이어지고, 극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막의 하이라이트 넘버인 ‘Speed’ 또한 이 모티프를 변주한 노래로서 강렬한 타악으로 무장한 채 다시 등장한다. 문제는 이 넘버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정작 렘피카의 넘버를 압도해 버린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음악이 안타고니스트(적대자)의 음악에 잠식당하는 이 구조는 작곡가의 의도에 의문을 표하게 한다. 그러나 마리네티가 미래주의를 제창하며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에 입당하는 인물로서 당시 시대상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점을 떠올리면 다르게 읽을 여지가 생기기도 한다. 렘피카의 목소리가 끝내 그 강압적 박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 여성 예술가의 삶 자체가 시대에 포박되어 있었음을 음악적으로 증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넘버 ‘Perfection’ 이후, 귀족으로서의 지위와 명예, 재산과 같은 모든 것을 빼앗긴 렘피카의 남편 렘피키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을 시작하는 장면이 뒤따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마리네티의 넘버는 극 처음부터 렘피카와 렘피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파괴해 왔으며, 결국 당시 시대의 가장 극단이었던 파시즘(Fascism)까지 도달하게 된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럼에도 렘피카는 그저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법대로 맞서 저항하는 것을 선택한다. 출발한 기차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렘피카 또한 멈출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렘피카에게 정적(靜的)은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여자는 질주하는 자동차”라는 렘피카의 말이 암시하듯, 렘피카는 자신만의 화풍으로 완성한 그림으로 세계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이에 작품이 일순간이지만 정지의 순간을 배치해 놓은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렘피카와 라파엘라가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거리의 여자로 살아온 라파엘라와 혁명으로 몰락한 귀족 렘피카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거래해야 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렘피카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야 했던 것처럼, 라파엘라 역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다. 그렇기에 렘피카가 라파엘라를 모델로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특별하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두 여성이 처음으로 멈춘다. 넘버 ‘Stillness’가 흐르는 동안 작품을 지배하던 강철의 리듬은 잠시 물러나고, 두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바라볼 여유를 얻는다. 이 순간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질주만을 강요하던 시대에 대한 잠깐의 저항처럼 보인다.&nbsp;</p>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4c91abd6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기억되고 싶은 여자들</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계급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이다. 혁명으로 모든 걸 잃은 후에도 렘피카는 첫 수입으로 월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팔찌를 산다. 그 장신구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노동자가 되어야 했지만, 동시에 귀족의 정체성 역시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몰락 이후에도 귀족의 체면을 버리지 못한 채 집 안에 머무르는 남편 렘피키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가장의 역할을 떠안은 것은 여자였고, 무너진 신분의 허상을 붙드는 것은 남자였다. 그러나 렘피카는 귀족의 세계에도,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다. 혁명으로 신분을 잃었지만 그 기억을 버릴 수 없었고, 라파엘라를 통해 새로운 삶과 욕망을 발견하지만, 그곳에도 끝내 안착하지 못한다.&nbsp;</p>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full is-resized"><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width="647" height="413"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jpg" alt="news 1780673494 1653016 m 1" class="wp-image-4149" style="width:647px;height:auto"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2"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jpg 647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300x191.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news_1780673494_1653016_m_1-150x96.jpg 150w" sizes="(max-width: 647px) 100vw, 647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런 점에서 박람회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남편과 라파엘라는 각각 렘피카에게 자신을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한쪽은 과거의 질서이고, 다른 한쪽은 새롭게 발견한 욕망이다. 그러나 렘피카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뒤이어 라파엘라마저 떠나보내는 이 삼각관계의 붕괴는 결국 렘피카라는 인물이 어떤 공동체에도 온전히 안착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낸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절망 끝에 자살을 시도한 렘피카 앞에 남작 부인이 나타난다. 이때 비싸고 화려한 팔찌가 붕대로 대체되는 연출은 인상적이다. 렘피카가 집착해 왔던 계급의 표식은 사라지고, 대신 상처만이 남는다. 죽음을 앞둔 남작 부인은 렘피카에게 말한다. “나 여기 있었음을 세상에 말해줘요. 나 기억되고 싶어요.”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질문을 드러낸다.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길 수 있는가. 렘피카에게 그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었다. 저항의 방식이었고, 자신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초상화 역시 비슷한 의미를 가졌다.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지는 대신, 자신의 얼굴과 삶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남작 부인의 부탁은 결국 렘피카가 평생 그려온 여자 초상의 의미를 다시 환기한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작품의 마지막은 자연스럽게 1975년 LA의 프롤로그로 돌아온다. 렘피카는 딸에게 자신이 죽으면 뼛가루를 멕시코의 포포카타페틀 분화구에 뿌려달라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완벽한 죽음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어 했다. 희귀하고, 아름답고, 오래도록 남는 존재. 이는 오프닝에서 자신의 그림을 모두가 원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던 태도와도 연결된다. 렘피카가 끝내 갈망했던 것은 단순한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Woman Is’의 리프라이즈 속에서 무대를 가득 채운 렘피카의 그림과 그것을 바라보는 렘피카의 모습이 보인다. 뮤지컬 &lt;렘피카&gt;는 렘피카를 성공한 화가로서 무대 위에 위치시키지 않았으며, 그녀는 붓으로 세상과 맞서며 끝내 자신의 삶을 살아냈던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녀가 신여성으로서 그린 여자들을 이야기하는 넘버 ‘Woman Is’가 전개되는 동안 작품은 그다음을 이야기하지 못한다.&nbsp;</p>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47c81439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8216;<strong>Woman is&#8217; ─ 폭발했으나 정의되지 못한 것</strong></h3></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 문제는 넘버 ‘Woman Is’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발생한다. 레치타티보가 드라마틱한 선율로 대개 폭발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하게 감정이 터지고 멜로디가 귀를 사로잡는 순간이 렘피카가 1부의 마지막 넘버이자 극의 하이라이트인 넘버 ‘Woman Is’를 부를 때이다. 무대 위 모든 통로에 조명이 켜지고, 렘피카의 누드화가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다. 음악과 조명, 무대 이미지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이 장면은 분명 작품의 정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뮤지컬 &lt;렘피카&gt;가 끝내 관객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nbsp;</p>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700" height="480"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700x480.png" alt="스크린샷 2026 06 17 오후 3.25.34" class="wp-image-4147"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3"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700x480.png 7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300x206.pn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150x103.png 15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768x526.png 768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스크린샷-2026-06-17-오후-3.25.34.png 1202w" sizes="(max-width: 700px) 100vw, 700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이 넘버는 렘피카가 생각하는, 그리고 이 작품이 정의하려는 ‘여자’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했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라파엘라로 표상되는 ‘여자’는 오직 렘피카에 의해 육체적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렘피카가 궁극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지, 여자로서 자신은 무엇이었는지, 작품은 그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는다. 그 결과 렘피카와 라파엘라의 사랑으로 대표되는 퀴어 서사는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서사적 밀도를 확보하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래해야 했던 두 여자의 동질감이 동성애로 번지는 과정은 그려지지만, 그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내 비워진 채로 남는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이에 뮤지컬 &lt;렘피카&gt;가 여성을 정의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렘피카에게 그림은 귀족 아가씨의 취미에서, 생계의 도구로, 다시 라파엘라라는 진정 그리고 싶은 대상으로 변모해간다. 그러나 정작 라파엘라가 떠나며 던지는 항변─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아니라 몸만을 원했다는, 뮤즈이자 대상로만 소비되었다는 그 외침─은 작품 자신을 향한 부메랑처럼 들린다. 모노클 클럽 장면은 이 문제를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수지 솔리도르의 클럽에서 펼쳐지는 레즈비언 파티는 분명 화려하며, 쇼스토퍼로서 그녀의 역할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안에 배치된 여장 남자 혹은 트렌스젠더로 추정되는 앙상블 연출이 정체조차 불분명한 채 등장한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별다른 맥락을 부여받지 못한 채 소비된다. 다양성을 전시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서사로 확장되지는 못하는 이 장면은 ‘여성과 레즈비언’에 대해 이 작품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nbsp;</p>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5ae6f041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3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strong>예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strong></h3></div></div>


<div class="wp-block-image">
<figure class="aligncenter size-full"><img decoding="async" width="700" height="469"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jpg" alt="127613 112847 3110" class="wp-image-4148" title="[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 4"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jpg 7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300x201.jpg 3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127613_112847_3110-150x101.jpg 150w" sizes="(max-width: 700px) 100vw, 700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사진©&#xfe0f;놀유니버스</figcaption></figure>
</div>


<p class="wp-block-paragraph">그럼에도 &lt;렘피카&gt;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예술과 전쟁의 관계에 있다. 전쟁 중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마리네티와 렘피카를 향한 남작 부인의 이 물음은 극 안에서 마리네티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지만, 그 짧은 질문은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명제로 작동한다. 렘피카가 마주한 위기는 혁명과 전쟁이었다. 하루아침에 익숙한 세계가 무너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의 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리고 그 위기는 형태를 바꿔 반복된다. 낡은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질서가 밀려드는 오늘─AI가 인간만의 것이라 여겼던 창작의 경계를 흔드는 지금─에도, 시대가 바뀌어도 &#8216;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가&#8217;라는 &lt;렘피카&gt;의 질문은 그대로 유효하다.&nbsp;</p>



<p class="wp-block-paragraph">작품 속 마리네티로부터 시작되어 렘피카에게 반복적으로 발화되는 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 바꿀 수 있는 건 네모난 캠퍼스 하나뿐”은 체념이 아니라 예술가의 믿음에 가깝다. 예술은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혁명을 저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기 존재했음을, 사랑했음을 기억하게 만들 수는 있다. 결국 &lt;렘피카&gt;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가 아니다. 예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가깝다. 전쟁과 혁명 속에서도,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시대 앞에서도 예술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라질 운명에 놓인 인간의 얼굴을 끝내 남기는 것. &lt;렘피카&gt;가 그려낸 수많은 여성 초상은 바로 그 오래된 예술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nbsp;</p>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a5668996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h2></div></div>



<div class="wp-block-group is-nowrap is-layout-flex wp-container-core-group-is-layout-8f761849 wp-block-group-is-layout-flex">
<p class="wp-block-paragraph">&#8211;<br><strong>뮤지컬 &lt;렘피카&gt;</strong><br>2026.03.21~2026.06.20<br>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p>
</div>



<div class="mzb-button mzb-button-728d1e2c "><a class="mzb-button-link is-medium is-style-filled" href="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6000685" target="_blank" rel="noopener">예매하기</a></div>



<p class="wp-block-paragraph"></p>
<p>게시물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eb%ae%a4%ec%a7%80%ec%bb%ac-%eb%a0%98%ed%94%bc%ec%b9%b4-%eb%a0%98%ed%94%bc%ec%b9%b4%ea%b0%80-%ea%b7%b8%eb%a6%ac%ea%b3%a0%ec%9e%90-%ed%96%88%eb%8d%98-%ec%97%ac%ec%9e%90%eb%8a%94-%eb%ac%b4%ec%97%87/">[뮤지컬 렘피카]  렘피카가 그리고자 했던 여자는 무엇이었는가</a>이 <a rel="nofollow" href="https://saicriticism.com">사이:비평</a>에 처음 등장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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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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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이진]]></dc:creator>
		<pubDate>Sat, 18 Apr 2026 14:53:18 +0000</pubDate>
				<category><![CDATA[비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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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부성(父性)의 사전적 의미는 ‘남성이 아버지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모성(母性)의 사전적 의미 또한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46;&#46;&#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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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부성(父性)의 사전적 의미는 ‘남성이 아버지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모성(母性)의 사전적 의미 또한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으로 거의 동일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본능’이란 단어다. 본능은 사전에서 ‘어떤 생물체가 태어난 후에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이라 설명한다. 부성과 모성 모두 후천적으로 학습되거나 사회적으로 강요받은 것이 아닌, 타고난 감정이라 정의한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극단적인 모성과 부성을 다룬 작품들은 많다. 영화 〈마더〉, 〈케빈에 대하여〉 등 악(惡)을 행한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혹은 영화 〈테이큰〉처럼 잃어버린 딸을 구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렇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외부 요인과 갈등하거나, 자기 자신과 내적 갈등하는 부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형태·장르로 변주되고 있다. 무대극 또한 그렇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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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class="mzb-image mzb-image-6a3f41e4"><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3603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0241202_145451218_11772-1.jpeg" alt="〈세일즈맨의 죽음〉(2025)" height="985" width="700"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5"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0241202_145451218_11772-1.jpeg 70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0241202_145451218_11772-1-213x300.jpeg 213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0241202_145451218_11772-1-355x500.jpeg 355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0241202_145451218_11772-1-150x211.jpeg 150w" sizes="auto, (max-width: 700px) 100vw, 700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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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class="mzb-image mzb-image-15290118"><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3600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10611032265207012.jpg" alt="〈그의 어머니〉(2025) " height="1097" width="867"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6"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10611032265207012.jpg 867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10611032265207012-237x300.jpg 237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10611032265207012-395x500.jpg 395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10611032265207012-150x190.jpg 15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10611032265207012-768x972.jpg 768w" sizes="auto, (max-width: 867px) 100vw, 867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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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70a819cc"><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82661388"><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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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2025년 1월 7일부터 3월 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버지이자 주인공 ‘윌리 로먼’의 부성을 다뤘다. (해당 작품은 (유)쇼앤텔플레이·(주)T2N미디어가 제작했으며, 서울 공연을 마친 후 2025년 3월부터 5월까지 부산·대구·용인·인천·수원·의정부에서 전국의 관객을 만났다.)</p>



<p class="wp-block-paragraph">국립극단이 제작하고 국립극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한 연극 〈그의 어머니〉초연은 2025년 4월 2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됐다. 2026년 명동예술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그의 어머니〉 재연은 4월 16일부터 5월 17일까지 다시 관객을 만난다. 〈그의 어머니〉는 어머니이자 주인공 ‘브렌다 카포위츠’의 모성을 다뤘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서 밀러가 집필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에 발표됐고, 에반 플레이시 〈그의 어머니〉는 2008년에 쓰였다. 이렇듯 두 작품 사이엔 60여 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음에도 시간을 뛰어넘는 공통된 정서가 존재한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큰아들에 대한 뒤틀린 집착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작품 모두 가족극을 표방했지만,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장남(長男)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과 애증을 깊게 다루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자식들이 형제 딱 두 명인데, 작은아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는 등장 장면뿐 아니라 주인공 윌리·브렌다의 마음속 무게감 또한 그렇다는 뜻이다. 뜻대로 자라주지 않았더라도, 모자란 자식일지라도 큰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대하게 되는 정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극의 윌리·브렌다는 가족 전체를 지키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큰아들을 가장 신경 쓴다. 윌리·브렌다는 가장, 즉 가족의 리더이기도 하다.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고, 강하게 살아야 하지만 마음은 약하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끊임없는 압박을 견디고 이겨내던 그들의 광기(狂氣)는 폭발한다. 그들이 미친 이유는, 큰아들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연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a179b690"><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30687615"><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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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32b938bc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Ⅰ. 환각(幻覺)이 된 환상(幻想)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2025)</h2></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윌리 로먼은 늙은 세일즈맨이다. 윌리는 60대의 나이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고된 외판원 일을 하고, 집 대출금을 25년째 갚는 성실한 가장이다. 하지만 그에겐 도덕적 결함이 있다. 과거에 출장차 갔던 보스턴에서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br><br>아들임에도 ‘별’, ‘헤라클레스’ 같단 말이 나올 정도로 외모도 훤칠하고, 촉망받는 풋볼 선수였던 장남 비프는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다. 수학 시험에서 낙제해 대학 진학이 위태로웠던 비프는 그 충격으로 운동도 그만두고, 전도유망하던 자기 자신을 놔버린다. 현재, 서른네 살이 될 때까지 안정적인 직업을 못 구한 비프는 도벽도 고치지 못했다. 빛나던 과거는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5dcd9984"><img decoding="async" class="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image.xportsnews.com/contents/images/upload/article/2025/0131/1738288446806327.jpg" alt="1738288446806327"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7"><figcaption>사진 제공: 사진 출처 :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br></figcaption></figure>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01bafac0"><br></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bb6ce9ee">〈세일즈맨의 죽음〉은 찬란했던 과거와 희망 없는 현재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현재의 비참함을 강조한다. 희망은 단지 재산이나 직업의 유무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다. 윌리는 큰아들 비프가 스포츠 스타가 될 거라 기대했다. 자신이 버는 돈과 차원이 다른 천문학적인 거액을 벌어다 줄 것이라 꿈꿨기에 그를 더 우러러봤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순진하고, 낙관적이고, 어리석은 희망과 숨 막히는 기대는 비프를 완전히 엇나가게 했다.</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654e0002">로먼 가의 가족 구성원은 아내 린다, 큰아들 비프, 작은아들 해피다. 윌리는 린다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늘 자식들 걱정을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 건 큰아들 비프다. 작은아들 해피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린다 또한 아내로서, 형제의 어머니로서 존중하거나 아낀다기보다 그냥 사는 것처럼 보인다. 린다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겼다면 부정을 저지르고 큰아들에게 들키는 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e0f1dd0b">윌리는 미식축구 에이스였던 비프를 남자 대 남자로서 동경했고, 불륜을 들켰을 땐 아버지로서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감정은 아내 린다에게 먼저 느껴야 하는 것이다. 내연녀에겐 새 스타킹을 사주는 그는 낡은 스타킹을 꿰매는 린다를 보며 짜증을 낸다. 강자 앞에선 약해지고, 약자 앞에선 강해지는 남성의 속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윌리에게 아내 린다는 약자고, 아들이지만 잘난 남자를 대하듯 우러러보고 희망을 걸었던 비프는 철저한 강자였다.</p>



<p class="mzb-paragraph mzb-paragraph-4df624dd">그는 또한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부정이 촉망받던 비프를 망가트렸단 걸 알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비프는 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간 자리에서 만년필을 훔쳐서 도망치는 기행을 저지르고, 집에선 아버지에게 수십 년간 쌓인 원망과 분노를 쏟아낸다. 그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실망하고, 인생도 포기하기 시작했던 순간은 윌리의 외도를 본 날부터였다. 하지만 그건 ‘계기’일 뿐, 비프는 내면에 차곡차곡 스트레스를 쌓으며 엇나가고 있었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e29120d6"><img decoding="async" class="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501/01.39155266.1.jpg" alt="01.39155266.1"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8"><figcaption>사진 제공: 사진 출처 :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br></figcaption></figure>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3b172eb6"><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div></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일용직을 전전하던 비프는 감옥 생활도 했었고, 현재도 도움을 구하러 간 중요한 자리에서 만년필을 훔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위태롭다. 자신을 시급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라 자조하는 비프는 아버지가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단 걸 알고도 남처럼 냉정하다. 하지만 비프는 명백히 윌리의 아들이다. 윌리 또한 비프처럼 마음의 병을 오래 앓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덕적 결함과 정신적인 불안이라는 유산(遺産)을 물려줬다.</p>



<p class="wp-block-paragraph">윌리는 생전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형 벤의 환각을 오랫동안 봐왔다. 한땐 꿈이자 희망이었던 비프가 자신은 시급 1달러짜리라며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준 후, 윌리는 알래스카에서 2만 달러를 벌었단 벤의 환각을 보곤 홀린 듯 따라간다. 이미 세상을 떠난 형을 쫓아간다는 건 죽음을 뜻한다. 윌리는 자동차 사고를 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가족에겐 거액의 사망 보험금이 지급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비프가 스포츠 스타가 돼 벌어준 돈도 아니고, 형처럼 사업에 성공해 번 돈도 아닌, 목숨과 맞바꾼 돈으로 윌리는 집 대출금을 죽어서야 전부 갚는다. 아버지이자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가족들에겐 슬픔이 드리웠지만, 벤의 환각을 춤추듯 경쾌하게 따라가는 윌리의 마지막은 행복하다. 비프의 분노에서 ‘그 애가 날 완전히 싫어하진 않는다’는 걸 읽었고, 드디어 아버지로서 장남에게 돈이라는 유의미한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었다.</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0e2fafee"><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div class="mzb-column mzb-column-7478f69c"><div class="mzb-column-inner"></div></div>
</div></div></div>



<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4ddbb824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Ⅱ. 연약한 몸, 인간 방패가 되다 – 연극 〈그의 어머니〉(2025)</h2></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브렌다 카포위츠는 집이란 감옥에 갇혔다. 열일곱살 큰아들 매튜가 하룻밤 사이 여학생 세 명을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가택 연금을 당한 매튜와 함께 집에 구금된 브렌다는 큰아들을 24시간 감시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녀는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둘째 아들 제이슨도 필사적으로 지킨다. 가족들의 집 앞엔 기자들이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다. 일상생활도 못 하는 자신과는 달리 아직 아홉 살인 제이슨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 매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제이슨은 형과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엄마의 이상한 행동,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이해 못 한다. 그래도 브렌다는 제이슨을 매튜로부터, 황색 언론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려 발버둥 친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0d288ac2"><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2684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40913540447903175.jpg" alt="〈그의 어머니〉(2025) 공연 사진" height="450" width="651"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9"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40913540447903175.jpg 651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25040913540447903175-300x207.jpg 300w" sizes="auto, (max-width: 651px) 100vw, 651px" /><figcaption>사진 제공: 국립극단</figcaption></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연극 〈그의 어머니〉의 핵심은 브렌다가 느끼고 보여주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감정과 표정들이다. 그녀는 분명히 죄를 저지른 매튜에게도 아직 모성을 갖고 있다. 반대로, 도저히 견디기 힘든 추악한 짓을 저지른 아들에게 엄마로서 분노와 증오 또한 들끓는다. 매튜가 ‘남자’로서의 욕구를 내보이며 죄인이 됐단 사실을 알았을 때, 브렌다는 그와 한집에 머물러야 하는 ‘여자’로서도 아들을 날카롭게 경계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브렌다가 매튜에게 느끼는 증오심은 집 안에서만 표현된다. 매튜는 여학생들의 영혼과 인권은 파괴했지만, 어린 남동생은 진심으로 아낀다. 브렌다는 함께 게임을 하는 형제, 자기 옷을 동생에게 주는 매튜를 감시하고 억압하며 통제한다. 가택 연금을 당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매튜를 제이슨에게서도 분리하며, 마지막 청정 구역만은 지키려는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 강한 엄마지만, 브렌다는 매튜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본능적으로 꺼리며 움츠러든다. 매튜의 여자 친구인 제시카가 집에 찾아와 그를 만나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순간도 불편하다. 성범죄를 저지른 남자인 매튜가 또다시 뭔 일을 할 까봐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이처럼 브렌다는 여자로서, 엄마로서 매튜를 절대 믿지 않는다.</p>



<p class="wp-block-paragraph">브렌다는 매튜를 증오한다.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고, 아직 어린 제이슨의 앞길도 막고, 무엇보다 엄마로서 오랫동안 헌신한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아들들을 지키려 애쓰던 브렌다는 매튜에게 지독하게 솔직해서 이기적인 분노를 터트린다. 너한테 남은 건 이젠 증오밖에 없고, 제이슨만은 잘 키우고 싶다고.</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브렌다의 감정적 폭발은 집 안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집 밖, 즉 남들 앞에선 브렌다는 여느 어머니처럼 아들을 보호한다. 현관에서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갔을 뿐인데, 브렌다는 광기에 가까운 처절한 모성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말 그대로 온 몸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뭐라도 캐내려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 앞에서 브렌다는 옷을 벗고 나신을 드러낸다. 집 안을 향하고, 아직 어린 제이슨을 겨누는 플래시 앞에서 브렌다는 절규한다. 차라리 날 찍으라고. 그녀의 몸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는 카메라의 섬광에 브렌다는 기꺼이 수백 번을 찔리며 피눈물을 흘린다.</p>



<figure class="mzb-image mzb-image-c453da7c"><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2974 hover-effect-static filter-none mask mask-none" src="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png" alt="hismother" height="450" width="651" title="〈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몸부림치다 10" srcset="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png 651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150x104.png 150w, 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4/hismother-300x207.png 300w" sizes="auto, (max-width: 651px) 100vw, 651px" /><figcaption>사진 제공: 국립극단</figcaption></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p>



<p class="wp-block-paragraph">성범죄자 아들의 어머니가 기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단 건 황색 언론이 물어뜯기 좋은 가십이다. 그녀의 행동은 감정적인 충동과 일탈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한편으론 일부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위일 수도 있겠다. 매튜에서 브렌다로 사람들의 이목이 완벽하게 쏠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잠시나마 아들을 지켰다.</p>



<p class="wp-block-paragraph">장면과 배우의 연기는 파격적이고 폭발적이지만, 무대 안쪽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뒷모습 만을 노출한 계산된 연출과도 맥이 통한다. 내용과 연출 모두 감정적으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치밀하게 짜였기 때문이다. 1막 엔딩인 이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아들의 성(性) 문제에 연루된 엄마들은 상상 못 할 행동을 종종 하니 말이다. 모성이 아름답다는 건 그저 환상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처럼 1막 엔딩에선 브렌다 홀로 기자들 앞에 서지만, 2막 엔딩에선 그녀와 매튜는 함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넌 내 아들이잖아’라며 그와 함께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온몸으로 견디는 브렌다. 건축 디자이너인 그녀는 자신이 만든 가정을, 자식을 흠 없이 완벽하게 설계하는 덴 실패했다. 하지만 집 밖에서만큼은 세상으로부터 아들들을 보호하려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여자, 어머니, 그리고 평범하고 입체적인 인간이었다.</p>



<div class="mzb-section mzb-section-39e477a0"><div class="mzb-container"><div class="mzb-section-inner is-horizontal justify-center 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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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zb-heading mzb-heading-f424a4a0 mzb-heading-layout-1 mzb-heading-layout-1-style-2"><div class="mzb-heading-inner mzb-post-heading"><h2 class="mzb-heading-text undefined" placeholder="This is heading">Ⅲ.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 속박을 털어내는 몸짓</h2></div></div>



<p class="wp-block-paragraph">〈세일즈맨의 죽음〉, 〈그의 어머니〉 모두 가족을 지키기 위한 부모의 처절함이 춤인지 몸부림인지 모를 기묘한 움직임으로 표출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윌리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어머니〉는 1막 엔딩에서 부성과 모성의 광기가 클라이막스에 달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세일즈맨의 죽음〉 윌리는 알래스카에서 거액을 번 형 벤의 환각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쫓아간다. 윌리는 가족에게 자신의 사망 보험금을 주기 위해 교통사고를 내며 삶을 끝낸다. 더없이 비참한 결말이지만, 춤추듯 가볍게 형의 환상과 돈을 따라가는 윌리의 뒷모습은 어린아이 같다. 윌리의 첫 장면은 일을 마치고 고된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의 발걸음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삶, 즉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죽음 같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살기 위해 떠나는 모습과도 같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의 어머니〉 브렌다가 집 앞을 진 치고 있는 기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 동작과 연기는 행위예술 같다. 행위예술(行爲藝術)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이나 내용을 신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을 뜻한다. 브렌다가 세상에 표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브렌다는 피해 여학생들을 원망하고,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욕하고, 언론에 유리하게 보일 행동을 연출하는 변호사 로버트에게 선 넘지 말라고 경고도 하는 평범하고 이기적인 엄마다. </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그녀는 성범죄자인 아들이 결백하다거나,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연히 만난 피해 여학생의 어머니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걸 알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큰아들 매튜가 아닌 가족과 일상, 그리고 집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장면 모두 배우에겐 연기력과 무대 내공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춤이나 행위예술이 아닌 몸부림에 가까운 기괴한 모습은 아들을, 나아가 가족 전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건 지키려는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털어내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몸부림을 통해 자기 자신을 털어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세일즈맨의 죽음〉 윌리는 세상을 떠난 형의 환상을 따라가며 목숨을 버렸다. 〈그의 어머니〉브렌다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스스로 사냥감이 되어 여성의 존엄성을 잠시 포기하고 가족을 지켰다. 가족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떳떳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고, 화살처럼 날아드는 플래시 세례에 맞서 기꺼이 인간 방패가 되는 모습에선 처절함을 뛰어넘은 숭고함이 보인다. 윌리 로먼과 브렌다 카포위츠를 보며 부모님을 떠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p>



<p class="wp-block-paragraph">가족은 가장 가깝지만, 때론 가장 멀게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존재다. 윌리와 브렌다 또한 이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과 〈그의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와 어떻게 공존할지도 사유하게 하는, 서늘한 경종을 울린 작품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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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연극 〈그의 어머니〉</strong><br>2025.04.02.–04.19. 국립극장 달오름극장<br>국립극단 / 원작 에반 플레이시 / 연출 류주연</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연극 〈세일즈맨의 죽음〉</strong><br>2025.01.07.–03.03.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br>원작 아서 밀러 / 연출 김재엽</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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