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강의 밤, 사라지지 않는 것: 화약에서 불꽃으로 – 밀양아리랑예술단 〈미리미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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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동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공연장에 가까워지는 순간 풍경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다리 위에는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이 빼곡했고, 공연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솜사탕과 닭꼬치 같은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었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과 연인, 어르신들이 강변 곳곳에 돗자리를 펴거나 계단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장 부근에는 과거 밀양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작은 조형물과 짚풀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먹거리와 지역 장터, 2026 전국 문화도시 박람회가 함께 열리고 있었다. 

 밀양강은 이미 하나의 공연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나의 축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2026년 9월 11일과 12일 오후 8시 밀양강 수상특설무대에서 공연된 <미리미동국>(밀양아리랑예술단)은 밀양의 옛 이름이자 변한의 소국으로 알려진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을 소재로 한 수상불꽃 가무악극이다. 대장장이이자 부족장인 마루와 누에 치는 아미가 사랑을 통해 미리미동국을 가야의 침입에 맞서 지켜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본 공연과 이어서 진행되는 밀양강 어화 꽃불놀이는 밀양의 역사·문화자원을 대표하는 공연 콘텐츠로 배치되었다. 이에 <미리미동국>은 극장 안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관객을 ‘밀양’이라는 장소 안으로 불러들이는 공연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세 가지가 놓였다. 강, 아리랑, 그리고 불꽃. 

강이 무대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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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양아리랑예술단

 <미리미동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위 배우가 아니다. 수많은 출연진을 압도하는 영남루와 밀양강이다. 특히 영남루를 이루는 절벽은 공연의 거대한 배경막이자 서사를 안내하는 장치가 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절벽 위에는 각 장(chapter)의 제목이 크게 투사된다. 이는 단순한 영상 효과를 넘어, 관객에게 이야기의 흐름을 안내하는 일종의 장면표이자 서사적 표지판으로 기능한다. 마루와 아미라는 두 주인공이 극 중 노래나 대사 대신 몸짓과 춤으로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러한 장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배우의 언어가 제한된 자리를 영남루의 절벽이 대신 채우면서, 자연경관은 공연의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이처럼 <미리미동국>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공연의 구성요소를 끌어들이는 산수실경공연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04년 중국에서 시작된 산수실경공연은 자연경관에 지역의 역사와 전설, 민요 등을 결합해 장소 자체를 공연의 무대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이후 관광산업과 결합하면서 지역의 장소성을 공연 콘텐츠로 전환하는 대표적인 형식이 되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실경역사뮤지컬 등이 전개되며 지역의 특수성을 살린 문화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는 동시에 관객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미리미동국>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영남루와 밀양강은 단순히 공연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밀양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공간이자, 전쟁이 밀려오는 통로이며, 배가 오가는 장소이고, 마지막에는 불꽃을 받아내는 거대한 수면이 된다. 즉 이 공연에서 강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움직이는 하나의 무대 언어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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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양아리랑예술단

가야군이 침입해 오는 장면에서 이러한 특징은 극대화된다. 가야군은 배를 타고 강을 통해 들어온다. 수상무대라는 조건이 곧 서사의 조건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육지에서 전투를 재현했다면 단순한 전쟁 장면이 되었을 것이지만, 강 위에서 배가 움직이며 침략군이 밀려오는 순간 관객은 외부의 힘이 강을 건너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다는 공간적 침범을 직접 체감하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배 위에서 쥐불놀이가 펼쳐지며 태극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장면이다. 불은 여기서 이미 두 얼굴을 갖는다. 한쪽에서는 전쟁의 불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동체가 손에 들고 돌리는 수호의 불이 된다. 파괴되는 불과 지키는 불이 같은 공간에서 교차한다. 쥐불놀이와 태극을 겹쳐놓은 이 장면은 역사적 재현이라기보다, 무대 위에서 빚어낸 창작에 가깝다. 쥐불놀이가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으로서 액을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불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연의 선택은 전통적 불의 의미와 연결된다. 불은 해로운 것을 태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한 축원의 매개가 된다. 그렇게 강은 전쟁의 통로에서 다시 공동체의 공간으로 바뀌며, 그 전환의 중심에 두 사람의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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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양아리랑예술단

마루와 아미가 서로의 몸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은 발레의 파드되를 연상시키면서도 한국무용의 호흡과 선으로 변주되어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회전하는 움직임은 서구 발레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흐른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도 앞서 언급한 가야군의 침입 장면과 같이 수상무대라는 조건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동안 화려한 공작새의 꼬리처럼 보이는 워터스크린이 전개된다. 몸짓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들의 감정을, 무대와 강의 경계선에서 솟아오르는 물이 또 하나의 무대 언어가 되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 순간 강은 실제 공간에서 벗어나 하나의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다만 수상무대의 가능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은 아쉽다. 가야군의 침입 장면에서 배가 강을 가로지르는 움직임은 인상적이었지만, 이후 배는 주로 수평적으로 이동하거나 불꽃을 쏘아 올리는 장치로 활용된다. 배를 사용한 연출에서 강의 깊이와 너비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수상무대만의 공간적 매력을 한층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장간의 세마치장단이 아리랑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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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양아리랑예술단

<미리미동국>의 서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대장간이다. 마루는 대장장이이고 아미는 누에를 친다. 이 설정은 변한 지역의 산업과 생활을 공연적으로 압축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변한 지역에서 철이 많이 생산되어 주변 지역과 교역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시에 이 지역에서 누에를 치고 뽕나무를 길러 비단과 베를 생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따라서 공연이 철과 잠업을 각각 마루와 아미의 삶으로 배치한 것은 지역의 고대 생산 문화를 상징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연에서 마루는 망치를 두드리다가 그 반복되는 소리에서 세마치장단을 발견한다. 이후 그 리듬은 밀양아리랑으로 이어진다. 세마치장단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원류가 셋이서 두드리는 대장간 망치질 소리에 있다는 해석이 있다. 세마치장단은 판소리, 민요, 농악 다양한 전통음악에서 두루 쓰였고,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다양한 전통음악의 기본 박자를 이루고 있다. 공연은 이처럼 대장간의 망치질과 세마치장단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마루의 망치가 쇠를 두드리던 반복이 리듬이 되고, 리듬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공동체의 기억이 된다. 즉, ‘망치’는 역사적 사실이나 상징성을 넘어 문화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자리한다. 마루가 죽은 뒤 아미가 그를 대신해 망치를 들어 올리는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마루가 쓰러지면서 대장간의 불은 꺼질 듯이 보인다. 하지만 아미는 역경 속에서도 망치를 끝내 다시 들어 올린다. 그 순간 힘찬 망치 소리가 들리고, 꺼져가던 희망이 다시 깨어난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밀양아리랑이 흐르기 시작한다. 망치 소리 자체가 음악으로 변하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지키고자 하는 민중들의 염원을 대표한다. 아미의 움직임 역시 살풀이춤과 씻김굿을 연상시키는 한국무용의 몸짓으로 이어진다. 죽은 마루를 애도하는 동시에 그 죽음에 붙들려 있지 않고 다음 시간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개인의 애도,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을 씻어내고, 공동체의 고통을 승화해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려는 굿의 몸짓이 하나의 몸 안에서 겹친다. 그 결과 아리랑은 단순히 밀양을 대표하는 노래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공동체의 목소리가 된다. 이렇듯 공연은 밀양아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적 중심에 놓인다. 사물놀이와 전통 타악기, 아리랑 리듬의 다양한 변주가 장면에 따라 사용되지만, 결국 음악은 밀양아리랑을 향해 최종적으로 수렴한다. 공연은 역사적 상상력과 밀양의 지형, 강의 공간성, 노동의 리듬을 겹쳐, 아리랑이 어떻게 이 지역의 몸에 새겨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미리미동국>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밀양아리랑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기원을 상기시키면서, 역사적 사료에 상상력을 더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의 밀양이 있기까지의 기억을 순식간에 지역민뿐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효과적으로 전한다. 그저 스쳐 듣던 밀양아리랑이, 이 무대를 통해 그 기원과 새로운 의미를 얻는 순간인 것이다. 

폭발과 불꽃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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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양아리랑예술단

공연의 가장 강한 시각적 효과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불꽃은 계속해서 그 의미를 변주하며 단순한 장식물이 아닌 극 중 의미를 획득한다. 처음 불꽃이 등장할 때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평화로운 시간을 장식한다. 미리미동국의 태평성대를 알리는 불꽃으로 말이다. 그러나 가야군이 침입하면서 불은 전투의 불꽃이 되고, 백성들이 전쟁을 피해 떠도는 장면에서도 전쟁의 참담함을 보여주듯 불꽃은 계속해서 터진다. 불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미는 혼자 남아 저항하고, 백성들 또한 그를 따라 다시 일어나며, 마침내 모두가 밀양아리랑을 부르는 순간 불은 다시 다른 의미가 있다. 새로운 미리미동국의 아침이 열리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등장해 불꽃을 터뜨리고, 사람들은 장구춤을 춘다. 이때 가장 화려한 불꽃이 터진다. 상모가 불꽃과 함께 회전하는 듯한 장면까지 이어지며, 하늘과 땅, 물과 불,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겹친다. 전쟁을 알리던 불이 이제는 새로운 공동체를 축하하는 불이 된다.

실제 화약과 불꽃놀이는 물질적으로도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다. 불꽃놀이는 폭발과 연소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빛과 색의 시각적 장관으로 전환해, 파괴의 현상을 관람과 축하의 대상으로 바꾼다. 서울에서 매년 열리는 한화의 불꽃축제 역시 이러한 맥락과 결부되어 있다. 한국화약에서 출발한 한화는 화약이라는 산업적 기술을 사회 공헌의 측면에서 매년 화려한 불꽃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미리미동국>에서도 유사한 전환이 일어난다. 철을 만드는 불이 전쟁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그 불은 마지막에 불꽃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이때 불꽃은 평화와 축원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쟁의 기억을 함께 품은 채, 두 의미를 동시에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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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소정

그리고 이 변환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미리미동국>이 끝난 직후 이어진 밀양강 어화(漁火) 꽃불놀이는 극의 부록처럼 붙은 이벤트가 아니다. 오히려 앞선 공연이 만들어놓은 시간의 문을 다시 현실로 열어주는 마지막 장면에 가깝다. 어화 꽃불놀이는 선조들이 밤에 강 위에 배를 띄우고 불을 밝혀 물고기를 모았던 어화의 정취를 화려한 낙화·불꽃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현재는 밀양의 대표적인 야간 특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꽃불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강 위에는 과거 어업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지며 노동요가 흘러나온다.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털어주세요”를 외치면 꽃불놀이를 준비한 사람들이 그 호응에 화답하듯 불을 밝힌다. 불꽃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밀양 지역의 과거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불꽃은 지금 밀양을 살아가거나 이곳을 지나가는 과객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순간,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구호를 통해 꽃불을 작동시키는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 한 마음이 된다. 

지역문화는 박물관에 갇힌 유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소리 내고 바라보고 움직이는 순간의 경험이다. <미리미동국>은 역사적 사실에 공연적 상상력을 더해 지역의 기억을 전시가 아닌 체험으로 옮겨놓는다. 결국 이 공연이 재현하는 것은 특정한 시대만이 아니라, 밀양의 아리랑과 문화를 오늘의 사람들에게 다시 전달하는 방식 그 자체다. 철이 녹아도 망치의 리듬은 남고, 사람이 죽어도 노래는 남는다. 공연이 끝나고 강은 그 자리에 남고, 불꽃이 꺼진 뒤에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의 기억은 남는 것처럼 말이다.

* 해당 비평문은 2026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글/공연∙뮤지컬 평론가 김소정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석사 졸업 및 박사수료
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장려상 수상
한국경제 아르떼 ‘김소정의 무대 밖 뮤지컬’ 연재

뮤지컬을 중심으로 공연예술 연구와 평론을 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공연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들의 집합체이자 변형이며, 공연비평은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찰나의 순간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마터그로도 활동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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