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강을 건너는 몸 – 최지연 무브먼트 〈몸 4개의 강(一夜九渡河)〉

무대와 객석을 잇는 감각의 선

무대와 객석을 잇는 가느다란 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건 그 선을 따라 객석에서 무대로 진입하는 무용수들의 느릿한 움직임이다. 실이 객석까지 이어지면서 관객은 무용수의 이동을 가까이에서 따라가게 되고 객석 역시 어둠 속 도하가 펼쳐지는 공간의 일부가 된다.

국립정동극장 2026 ‘창작ing’ 무용 부문 선정작인 최지연 무브먼트의 〈몸 4개의 강(一夜九渡河)〉(2026.7.12.-7.14., 국립정동극장 세실, 안무 최지연)은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의 「일야구도하」에 기록한 하룻밤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2018년 제32회 한국무용제전 우수작품상을 받은 이 작품은 이번 무대에서 동시대의 신체와 감각에 관한 질문을 다시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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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재)국립정동극장 

감각으로 다시 읽는 연암의 도하

연암은 어둠 속에서 아홉 번 강을 건너며 들리는 물소리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본 작품은 이 고전적 일화를 서사적으로 재현하거나 연암이라는 인물을 무대 위에 직접 복원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명확히 볼 수 없는 환경에서 몸이 어떻게 세계를 감지하고 공포를 견디며 다음 움직임을 선택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강을 건넌다는 것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익숙한 감각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를 몸으로 통과하는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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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재)국립정동극장 

작품 속 실과 밧줄은 강줄기를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장치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더듬어 나아가게 하는 감각의 경로로 읽힌다. 그것은 무용수에게 방향과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움직임을 제한하고 다른 몸과 얽히게 한다. 길이면서 장애물이고, 몸을 지탱하면서도 속박하는 것이다. 이 오브제는 개별적인 몸과 몸, 몸과 공간, 나아가 무대와 관객을 연결하는 관계의 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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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재)국립정동극장 

공연에 앞서 공개된 홍보사진과 영상들은 실제 물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물과 맞닿은 신체, 서로 얽힌 몸의 이미지는 작품이 다루는 감각과 관계의 문제를 공연 이전부터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홍보사진을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작품 세계의 연장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처럼 공연 전부터 강조된 물의 이미지는 무대 위에서 보다 구체적인 신체의 문제로 이어진다. 무대에 실제 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파도나 물속을 연상시키는 영상은 공간 전체를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감각의 환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때, 물은 몸의 균형과 감각이 흔들리는 상태를 환기하는 이미지로 작동한다. 물속에서 몸은 지상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서거나 움직일 수 없다. 물이라는 환경은 몸이 익숙하게 사용해 온 운동 방식을 무너뜨리고,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감각을 전면으로 불러낸다. 그런 점에서 몸은 이미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는 매개가 아니라, 감각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된다. 연암이 물소리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깨달았던 것처럼 작품은 세계가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기보다 감각하는 몸과의 관계 속에서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작품이 제시한 다양한 감각이 실제 움직임 안에서 서로 다른 결로 드러 났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 실과 밧줄이 만들어내는 강한 시각적 이미지가 작품의 감각적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몸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감각의 차이를 다소 포괄적인 개념으로 묶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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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재)국립정동극장 

불확실성 속, 감각을 믿는 몸

〈몸 4개의 강〉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오늘의 몸이 무엇을 의지해 움직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에 남는 것은 완전한 판단이나 확신이 아니라 손끝에 전해지는 떨림과 흐트러지는 호흡 같은 불완전한 감각이다. 작품은 바로 그 감각이 다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몸은 모든 것을 볼 수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감지한다. 〈몸 4개의 강〉은 연암이 건넌 강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감각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 동시대의 몸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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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재)국립정동극장 

글/공연∙무용 평론가 한성주

202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 비평가 육성 프로그램 우수비평가상 수상
한양대학교 공연예술학 석사 / 상명대학교 공연예술경영학 박사 수료

현재 무용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 에디터로 활동하며 춤의 현장을 기록해 오고 있다. 춤의 순간을 텍스트로 아카이빙하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무용이 어떻게 동시대 삶과 맞닿은 공감의 언어로 읽힐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무용 〈몸 4개의 강(一夜九渡河)〉
2026.07.12.-07.14. 국립정동극장 세실
최지연 무브먼트 / 안무 최지연 / 대본∙연출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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