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은 가락 – ‘자기 산조’의 시대

“자기 산조를 만들어라” 필자가 대학생이던 2000년대 초, MBC 우리 소리를 찾아서 최상일 PD가 특강에서 한 이야기다. 막 음악인의 길에 들어선 상황에서 산조는 감히 우리가 건드려도 될까 싶은 큰 탑과 같았다. 어떻게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 만든 산조에 대항하여 내 이름을 건 산조를 만들 수 있을까? 다행히도 신성시되던 산조 창작은 스스로 곡을 쓰면서 연주 활동을 하는 이들에 의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자연스레 창작의 방향이 서양음악에 기댄 퓨전에서 창작자의 내면을 표출하는 현대음악으로 다시 진짜란 무엇인가의 질문에서 제도 밖 전통음악의 관심과 창작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면서 산조의 창작이 보다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산조의 창작은 신중하다. 2018년 의정부가야금축제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균나이 65세였던 명인들의 대기실에서 공연을 앞두고 판이 벌어졌다. 두 가야금 명인이 즉흥 합주가 시작된 것이다. 장단치는 이는 없는데도 실을 엮듯 누군가 음을 높이면 다른 이는 낮은 음에서 놀다 만난다. 제자들의 흥분된 추임새가 이어지고 공연 전 뜻밖의 귀호강에 황홀했다. 명인들은 평생 자신이 학습한 스승의 가락만 오롯이 타는 줄 알았다. 좀 세게 말하면 산조의 박제화는 이분들과 같이 스승과 제자간의 엄격함에서 이루어지는 거라 믿었다. 본인들이 가진 귀중한 가락이 이렇게 많은데도 왜 자기 산조를 만들지 않을까? 공연이 끝난 후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한 명인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했다. 제자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창작 욕구를 발현하기 보다 자신이 큰 울타리를 만들어 주어야 스승의 산조가 지켜지고 제자를 안전하게 하는 일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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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지식백과

어찌 되었든 산조의 창작에 관한 개념은 많이 전환되고 있는 모양새다. 2010년 전후 박사학위 개설과 맞물려 초기 산조의 복원 연주가 한창 진행되었다. 이후 연주자 개인의 이름을 딴 산조가 제법 등장하고, 한 대학에서는 산조 창작하기 수업이 개설되었다. 2021년부터 돈화문국악당의 산조대전과 같이 새로운 산조가 설수 있는 무대도 생겼다. 지난 2025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훈, 퉁소, 생황, 단소, 가야금, 철현금,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의 산조가 선보였다. 산조(散調)는 느림에서 빠름으로 가는 한배 형식의 독주곡이라는 장르에서 그야말로 흩어진 가락을 엮어내는 창작 방식으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했다. 연주자가 직접 창작한 산조도 있지만 명인의 구음 전수를 통해 다른 악기의 산조가 탄생한 경우도 있고, 작곡자와 연주자가 분리된 창작 방식도 확인된다. 이제 2000년대 초반 ‘산조의 박제화’란 화두는 넣어 두어도 좋지 않을까? 이쯤에서 새산조에 대한 현상을 점검 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글에서는 여러 개념의 산조 중에서 전통적인 형식미와 음악적 요소를 내재한 산조에 한정하며 다뤄보겠다.

기존의 산조는 콩쿨과 입시에 힘입어 대학 내 전공이 가장 많은 악기 순으로 전승이 이루어졌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피리 그리고 아쟁의 산조이다. 새로 창작된 산조의 악기군은 흥미롭게도 단소, 소금, 철현금, 생황, 퉁소 등과 같은 소수 전공 악기부터 제례음악에서 몇 음만 사용하여 부는 훈처럼 산조의 선율을 소화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악기, 그리고 바이올린, 피아노, 하모니카 등의 서양악기까지 확장된다. 장구산조나 꽹과리산조같이 타악기로 구성된 산조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기존 산조가 있던 가야금, 거문고 등의 새산조도 나타나지만 주류 국악기 이외 새로운 악기에서 산조에 대한 목마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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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가유산청

산조 구성의 요소는 크게 장단 틀과 선율의 맥락, 문답(음양)의 형식미, 성음 등을 꼽을 수 있다. 장단은 장단명을 가리키면서도 산조의 악장명이기도 하다. 기존의 구성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이어지는 한배 형식인데, 새산조에서는 이 구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방식과 산조 틀을 깨고 새 장단을 끼우는 방식 두 가지가 관찰된다. 기존의 구성을 가져가는 방식은 익숙한 장단 구성에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청보2장, 푸살과 같은 굿장단을 끼운 방식도 있다. 새 장단을 끼우는 방식은 청자에게 익숙한 방식에서 새로운 음악적 묘미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선율은 기존의 산조에 비춰 봤을 때 가진 재료가 풍부할수록 그 구조가 정교해진다. 산조의 원류를 찾을 때 흔히 시나위, 판소리, 봉장취 등을 꼽는데 이것은 대부분 그 선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에서 온다. 그래서 지역적 특색이나 창작자의 기존 음악적 바탕이 산조에서 드러난다. 이생강 대금산조의 봉장취 가락, 지영희 해금산조의 경기시나위가락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계면조 일색의 산조는 청자를 설득하기에 빈약하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생삼청은 계면조에서 약 3도 정도를 올려 연주한다. 심상건류 가야금산조의 당악은 장단 뿐만 아니라 가락에서 당악 선율이 확인된다.

악기의 연주적 한계는 오히려 정형화된 기존 산조의 틀을 깨는데 도움을 준다. 메나리는 산조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퉁소산조는 아주 잘 어울리며, 함경도 북청사자놀이 선율을 차용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송경근의 훈 산조는 내드름에 풍류음악인 상령산풀이를 차용하여 신선함을 준다. 다채로운 선율은 창작자의 주머니에서 적재적소에 꺼내 쓰는 것이고 그 주머니는 결국 선율적 재료를 일생에 걸쳐서 든든히 채워 두어야 하는 것이다.

새 장단을 넣는 일과 선율을 엮는 것은 맥락이 있어야 한다. 그 장단과 선율이 왜 들어갔느냐에 대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청자는 어색함만 느끼게 된다. 장단과 선율을 엮는 방식은 대마디대장단, 완자걸이, 잉어걸이, 달거나 맺기 등의 전통적 방식이 있다. 기존 산조의 충분한 이해 없이 가락을 구성하다보면 긴장과 이완의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중모리에서 11~12박을 비우지 않으면 답답하고 추임새도 넣기 어려울뿐더러 연주자도 숨구멍이 없다. 산조의 형식미라 할 수 있는 문답 방식은 선율의 안정감을 준다. 다음 장단의 선율을 예측할 수 있도록 기대감을 주며 예측이 맞아 떨어졌을 때 쾌감이 있다. 음과 양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도 전통의 미적 감각에 부합한다. 기경결해 역시 가락을 구성하는 형식미이다. 저음에서 가락을 내고 점점 높은 음으로 올라가 클라이막스를 찍고 해결한다. 지영희류 짧은 해금산조의 진양이 여기에 속한다.

대부분 산조의 떨고 꺾는 시김새에만 집중하지만 시김새가 없어도 산조의 형식미를 가졌을 때 산조라 느껴진다. 전지환의 꽹과리산조는 선율이 없음에도 왜 산조로 느껴지는가. 바로 장단과 한배라는 전체적인 형식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양한 주법을 맥락 있게 구사하며 음과 음 사이를 내던지지 않고 하나하나 구슬을 꿰는 성음 놀음이 있다.

산조의 맥락은 악기를 바꾸어보니 더 확실하게 드러났다.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가 김일구류 아쟁산조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했을 때 주법의 어색함이 있을지언정 산조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쟁으로 다듬어진 산조 가락의 구성이 충분히 타당하기 때문에 청자가 완전히 설득당한 것이다. 즉 산조의 구조와 맥락이 맞다면 어떤 악기로 연주를 해도 산조 자체의 완성도는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유민희 작곡의 류근화 연주 대금산조에서도 선율의 맥락이 확실히 드러난다. 트릴 같은 서양식 기법에 내드름과 문답의 형식미, 확실한 종지형을 제시함으로써 새산조에 대한 거부감도 덜었을뿐더러 판소리 가락을 대금으로 구현하면서 새로운 길의 계면 음형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재미도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엇모리의 내드름이다. 엇모리에 메나리조를 결합하면서 흥보가와 심청가 등의 중타령이 연상되었다. 판소리에서 스님을 표현하는 음악적 요소인 엇모리와 메나리를 산조로 구현한 것이다. 전통 악곡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연주자가 음과 음 사이의 성음을 완벽하게 구사해주어 산조의 구성에 설득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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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수정

성음은 산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지만 기존 산조 창시자가 직접 연주한 산조를 들어보면 전승되는 과정에서 더 강화되는 것 같다. 특히 특수악기의 산조는 구성이나 성음에서 설익은 초기산조와 유사하다. 성음은 음과 음 사이를 정성스레 만드는 공력이자 악기의 음색, 소리의 볼륨을 다루는 방식과 연결된다. 최여영 퉁소산조의 경우 짜임이 나쁘지 않은데 왜 퉁소다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지 고민해 봤을 때, 가장 핵심은 퉁소의 성음이라고 본다. 김동근의 퉁소산조에서는 퉁소 소리가 나고, 이들의 스승인 동선본의 퉁소 연주에서는 당연히 공기를 가득 머금은 퉁소 소리가 난다. 그러나 저음에서 대금소리가 고음에서는 단소소리가 나는 이유는 연주력의 문제보다 창작자의 학습배경에서 오는 것 같다. 물론 창작자의 예술적 의도이었을지 모르겠으나 퉁소를 퉁소답게 하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과거에 퉁소가 사라진 맥락과 같은 이유다.

산조의 미래는 지난 100년간 증명해왔다. 어떤 산조는 사라지고 어떤 산조는 존속된다. 누군가는 제도나 스승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짜임이 좋은 산조는 결국 생존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산조의 미래는 세 단계 정도 예측된다. 일단 양적으로 많아져야 한다. 양적 확장이 이루어진 뒤 청자에 의해 좋게 느껴진 산조가 걸러진다. 좋게 느껴진 산조는 언어로 이유를 설명하진 못해도 음악적으로 관객을 설득한 산조다. 이렇게 설득력 있는 산조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타인이 그 산조를 하고 싶어질만한 욕구를 일으키면 스테디셀러가 되고 제자가 모인다. 스테디셀러가 콩쿨과 입시에서 다른 산조와 대결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경쟁력이 있다면 살아 남을 것이다.

글/공연예술평론가 구수정

한국중앙연구원 문학박사(음악학)
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대상 수상

소외되고 외로운 것에 마음이 가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 썼다. 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등단했다. 음악치료사, 교육가, 연구자 등 음악 안에서 인생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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