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잘못은 정말 ‘없는’ 것인가 – 창작집단 양산박 〈없는 잘못〉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라는 말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가장 손쉬운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크고 작은 참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복합적인 요인’과 ‘관계 부처 간 협의’가 남았고, 책임은 여러 주체 사이로 흩어졌다. 누군가의 잘못을 묻는 일은 언제나 가능해 보였지만, 정작 그 잘못이 정확히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묻는 순간 답은 희미해졌다.
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무엇을 추천하고 무엇을 학습하는지조차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이 인간의 일상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AI가 초래한 피해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 〈없는 잘못〉은 이 질문을 AI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AI 이전에는 과연 책임을 제대로 규명하고,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물어왔는가.
연극 <없는 잘못>(2026.07.17.~2026.07.26.,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인 윤주호의 희곡을 같은 해 단막극으로 초연한 뒤 장막극으로 발전시킨 이번 작품에서 AI 추천 피드가 청소년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설정은 표면에 놓인 사건에 가깝다. 작품이 궁극적으로 겨누는 것은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책임의 주체를 특정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지 오래된 구조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새로운 가해자라기보다 이미 존재해온 무책임의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다.
무엇이 ‘없는’가

극은 특정 AI 알고리즘 영상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죽음이라는, 실제 있을 법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 사건이 AI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극 중 알고리즘을 개발한 회사의 대표와 정부만이 알고 있었던 진실―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이들이 모두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음―은 AI라는 첨단 기술의 스캔들 뒤에 훨씬 오래된 폭력의 구조가 숨어 있었음을 폭로한다. AI는 방아쇠를 당겼을 뿐, 총알을 장전한 것은 다른 무엇이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극이 정교하게 파고드는 것은 ‘누가 잘못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잘못을 규명할 수 있는 구조가 애초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조사관은 스스로도 온전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조사를 진행하고, 회사 개발팀 팀원은 경영진이 이미 문제를 예상했지만 침묵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혼자 뒤집어쓰기 싫다고 말한다. 극은 이들 각자에게 명확한 악의가 있었다고 단죄하지 않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어 개념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합적인 인과관계’ 속에서 책임의 주체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관련자 전원이 혐의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결말은, 이것이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애초부터 책임을 흩어놓도록 설계된 시스템의 승리임을 냉정하게 짚어낸다.
제목 ‘없는 잘못’은 그래서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내 잘못은 없다’라는 각 인물의 항변이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애초에 잘못을 특정할 수 있는 좌표 자체가 이 사회에 없다는 진단이다. 극은 이 부재를 냉소로 흘려보내지 않고, 관객에게 ‘우리 모두 여기에 일조하고 있었음’을 무대 연출을 통해 시각화한다. 일상의 보도블록과 이어진 극장 객석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극이 진행되던 무대에 일상의 시공간이 침투해오며 극의 시·공간과 뒤엉킨다. 이를 통해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 배우가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현실을 인지시켰던 것처럼, 〈없는 잘못〉은 미아리고개극장이라는 공간적 특징을 사용해 객석에 앉아 사건을 관망하던 관객마저 책임을 외면해 온 구조의 목격자 자리로 이끈다.
블랙박스(black box)의 변화와 시각화
본래 ‘블랙박스’란 내부의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채 입력과 출력만을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공학적 용어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무언가를 넣었을 때 무엇이 나오는지로만 그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정반대의 맥락에서도 사용되어 왔다. 항공기 사고 조사에 쓰이는 블랙박스(비행기 기록장치)는 역설적으로 사고의 원인, 즉 ‘누구의, 무엇의 잘못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다. 이 기록장치는 참사 이후 가장 먼저 수색하는 대상이자 책임 소재를 가리는 유일한 물증이 된다. 자동차에 설치되는 블랙박스(대시캠) 역시 마찬가지다―사고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록하고 저장해 둔다. 즉 ‘블랙박스’라는 단어는 이해할 수 없는 불투명함과, 불투명함 속에서도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모순적인 기표다.

〈없는 잘못〉은 이 모순을 정확히 겨냥한다. 극 중 블랙박스는 크게 두 가지의 맥락에서 사용된다. 하나는 AI를 블랙박스에 빗대는 언어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무대큐브(블랙박스)이다. 이때, 후자의 블랙박스는 증식할수록 사건을 규명하는 항공기록장치나 대시캠의 기능과는 정반대로 작동한다. 박스가 늘어갈수록 무대는 오히려 더 불투명해지고, 관객은 저 안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더더욱 알 수 없게 된다. 사건의 진실이 파헤쳐질수록 투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짙어지는 이 역설이야말로, 극이 말하고자 하는 우리 시대 책임 구조의 초상이다. 데이터는 쌓이고 알고리즘은 정교해지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는지는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동시에 극은 여기에 또 다른 오랜 별명, 텔레비전의 ‘바보상자’를 겹쳐놓는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와, 익숙한 이미지를 반복하여 사고를 대신해 온 바보상자가 겹칠 때, 작품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과거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AI가 내놓는 답변 역시 손쉽게 진실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증식하는 검은 박스(무대 큐브)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진실을 확인하는 대신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동시대의 불투명성을 물질화하는 오브제로 기능하게 된다.

특히, 극 중후반, 이 박스들이 격자판 형태로 재배치되며 미로 같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는 조사와 추적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길을 잃도록 설계된 미로 속에서 헤매는 행위임을 공간적으로 증언한다. 이때 외계인 형상을 한 인물(음모론자)이 들어와 진실에는 관심 없는 언론의 행태를 경고하고, 뒤로는 ‘세상이 왜 이래’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한탄하는 나훈아의 〈테스형!〉이 재생된다. 이 이질적인 캐릭터의 등장은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 사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흔들어 놓는다. 이후 계속해서 등장하는 강렬한 〈테스형!〉의 멜로디는 극 중의 대사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책임을 분명하게 규명할 수 있는 현실에 한탄의 숨을 내쉬며 대사와 노래를 분리한다. 과연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사일지, 아니면 노래일지 관객에게 질문하면서 말이다.
콩트가 된 비극, 비극이 된 콩트

장진웅 연출은 청소년의 죽음과 학대, 언론의 부패, 정경유착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본 작품을 연출하는 데 있어 콩트적 어조를 선택한다. 기자가 내부고발자인 개발팀 임원을 뒤쫓는 장면이 달리기에서 수영으로, 다시 총싸움을 방불케 하는 과장적인 행동으로 확장되는 방식은 명백히 희극적인 과잉이다. 이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조사관과 기자가 이어서 서로가 진실을 독점하기 위해 주도권 싸움을 하고, 이 과정은 정열의 탱고로 풀어진다. 또한 내부고발자가 조사실에서 서명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조사관은 한 편에서 당구를 친다.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재미나 흥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장진웅은 연속되는 콩트 장면에서 관객이 마음 편하게 웃어도 되는지, 아니면 그것을 보고 불쾌해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진중함과 콩트의 병치는 극 중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덮친다. 비극이 곧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곧 이윤이 되는 현실의 순환 구조는, 진중함과 콩트의 결합 그 자체가 아닌가? 작금의 현실을 무거운 톤으로만 전달했다면 관객은 익숙한 사회고발극의 구조 안에서 안전하게 슬퍼하고 극장을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웃음과 죄책감이 뒤섞인 불편한 감정 상태로 관객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관객은 ‘책임을 진다’라는 것이 과연 이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라는 회의와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막이 내린 뒤에서 <테스형!>의 멜로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무대와 객석, 극장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서 반복되는 이 노래는 책임을 묻는 질문이 끝내 명확한 답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환기한다. 극은 끝까지 책임을 추적하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귀속시킬 한 사람을 끝내 만들지 않는다. 대신 질문만 남긴다. 우리는 정말 책임자를 찾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책임자가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인가. 〈없는 잘못〉이 무대 위에서 끝내 보여주는 것은 ‘잘못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잘못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누구의 것으로도 만들 수 없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글/공연∙뮤지컬 평론가 김소정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석사 졸업 및 박사 수료
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장려상 수상
한국경제 아르떼 「김소정의 무대 밖 뮤지컬」 연재
뮤지컬을 중심으로 공연예술 연구와 평론을 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공연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들의 집합체이자 변형이며, 공연 비평은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찰나의 순간 사라져가는 것들을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마터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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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없는 잘못〉
2026.07.17~2026.07.26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창작집단 양산박 / 작 윤주호 연출 장진웅 드라마투르그 오판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