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올라오스, 그 이름이 묻는 것 – 섬으로간 나비 〈이올라오스〉

연극 <이올라오스>(극작 천성진, 연출 박고은)는 테베의 신성부대의 마지막 전투였던 카이로네이아 전쟁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멜라스(김준식), 아가토(신수빈), 피론(정태영)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카이로네이아 전투는 테베의 신성부대가 대부분 전멸한 전투로 기록된다. 신성부대는 150쌍, 300명의 남성 연인으로 이루어진 정예 보병대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의 맹세는 헤라클레스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였던 이올라오스의 무덤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작품은 이들의 맹세 장소였던 이올라오스의 무덤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이때 후대에는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의 관계를 연인으로 해석하는 전승 역시 이어졌고, 이올라오스는 ‘함께 싸우는 자’, ‘끝내 남아 기억하는 자’의 상징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본 작품이 ‘이올라오스’를 제목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무대 위에 이올라오스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이 단어를 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올라오스’는 처음부터 부재한다. 그리고 그 부재한 자리를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피론에게 이어진다. ‘증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피론의 기도’는 단순한 엔딩의 여운이 아니다. 이는 제목이 처음부터 예비해 둔 결말이다. 살아남아 기억하는 자, 죽음 이를 대신해 증언하는 자. 이 극은 처음부터 이올라오스라는 자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세 인물의 이름 역시 이러한 구조를 미리 암시한다. 멜라스는 그리스어 μέλας(mělas)로 ‘검다’, ‘어둡다’를 뜻하고, 아가토는 ‘좋음’, ‘선함’을 의미하는 ‘아가토스(ἀγαθός, agathǒs)’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피론은 불을 뜻하는 ‘퓌르(πῦρ, pür)’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문자 그대로 불꽃을 품은 존재다. 어둠과 선함 사이에서 타오르는 불. 그러나 불은 어느 한쪽의 편이 아니다. 그것은 어둠을 밝히기도 하고, 선마저 태워 새로운 세계를 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극은 세 인물의 이름만으로도 권력과 윤리, 그리고 변화의 삼각구도를 이미 설계해 두고 있다. 

연대와 사랑 사이에서

멜라스문성일아가토김서환
사진 ⓒ섬으로 간 나비

‘연대’는 보통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자주 호출되어 왔다. 이 작품을 단순히 연대의 서사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아가토와 멜라스의 과거, 그리고 아가토와 피론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는 끔찍한 전쟁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나누며 기대고, 위로받고 싶었던 감정에 기반한 전쟁의 참사 속에 피어난 사랑이자 동시에 군인들의 연대로 읽히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은 오직 남성이었고, 여성과 노예, 이방인은 공동체의 바깥에 놓여 있었다. 신성부대는 바로 그 협소한 시민 공동체 안에서 탄생한 군대였다. 그들에게 전쟁은 국가를 위해 추상적 명분을 수행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곁에 선 자신의 연인을 지키는 일이었다. 사랑은 전쟁의 부수적인 감정이 아니라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직접적인 동기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성부대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로 환원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연대이기도 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피론정태영아가토신수빈
사진 ⓒ섬으로 간 나비

사람들에게 전쟁 영웅이라 칭송받는 멜라스는 전쟁에 더욱 집착하게 되고, 순수한 청년 피론까지 유흥 거리로 소비하기에 이른다. 이런 그의 모습에 아가토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멜라스와 아가토는 연인 사이이지만, 멜라스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실질적으로 권력과 위계가 지배하는 관계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가토는 점점 답답함을 느끼고, 그의 세계에 피론이 우발적으로 들어온다. 오래전부터 아가토를 존경해 왔음을 고백하는 피론 앞에서, 아가토는 비로소 숨을 내쉰다. 멜라스의 통제 아래 있던 아가토가 피론이라는 불꽃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어둠(멜라스)에 있던 선(아가토)이 불꽃을 통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스스로를 계속 정화하는 모습에서 세 인물의 의미가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멜라스가 아가토에게 행사했던 억압도, 종국에 아가토가 피론을 전장에서 탈출시키는 선택도 표면적으로는 모두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는 상대를 자신의 곁에 붙들어두려는 소유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가 살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사랑이다. 극은 이 둘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사랑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쉽게 통제의 언어로 억압의 족쇄이자 정당성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환기한다. 

서로 다른 두 형태의 사랑은 결국 멜라스와 아가토 각자의 죽음으로 완결된다. 아가토는 오래전부터 전쟁에서 벗어나기를 꿈꿨다. 멜라스 역시 한때 함께 떠나자고 말했지만 끝내 실행하지 않는다. 결국 아가토는 자신은 맹세로 인하여 벗어날 수 없는 전장에서 피론만을 떠나보낸 채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 앞에 멜라스는 그를 향한 뒤틀린 감정을 쏟아내며 적의 칼에 숨을 거둔다. 

전쟁에 집착하던 멜라스의 숨은 끊어지고, 전투가 끝난 후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있는 인물은 피론 뿐이다. 아가토와 숨결을 나눴던 피론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됨으로써 피론은 아가토의 숨을 자양분으로 살아남아 그 숨을 이어 나간다. 극은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피론의 신분에 근거한다. 천민인 그는 처음부터 신성부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만큼 맹세와 명예의 체계 바깥에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다른 군인들과 달리 도망칠 수 있었다. 신성부대 안에 있었지만, 온전히 속해 있지 않았기에 피론은 그 체계와 함께 죽지 않은 것이다. 

피론윤여백
사진 ⓒ섬으로 간 나비

멜라스와 아가토는 서로 다른 신념을 품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맹세와 명예라는 동일한 질서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사랑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끝내 자신을 구속한 질서를 넘어설 수 없었던 삶의 구속구이기도 하다. 반면 피론은 맹세하지 않았기에 살았다. 그러나 그의 생존은 보상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의무의 시작이다. 그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증언해야 한다. 이 순간 피론은 더 이상 한 명의 병사가 아니다. 부재했던 이올라오스의 자리를 이어받은 존재가 된다. 이에 처음 신에게 기도하며 등장했던 아가토의 자리를 이어받아 그 자리에 피론이 서게 된다. 이 결말을 통해 연극 <이올라오스>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지금 신성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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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소정

본 공연이 2300년 전 테베의 신성부대를 다시 불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와 안보, 명분이라는 거대한 언어가 희생을 정당화해 온 세월 속, 이 극은 전쟁의 동력을 국가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도 되돌린다. 신성부대의 역설은 가장 사적인 사랑이 가장 강한 공적 결속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 아니다. 작품은 한때 효율적인 전략처럼 보였던 사랑을 기반으로 한 군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극단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통제로 변하고, 도구가 되며, 혹은 반대로 누군가를 해방하는 힘이 되는지를 추적한다. 

다만 이러한 구조가 온전히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바로 아가토와 멜라스 간 사랑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은 두 사람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는 보여주지만, 그 사랑이 형성되어온 시간은 거의 비워둔다. 무엇이 두 사람을 서로에게 이끌게 했는지, 왜 하필 이 둘이어야 했는지가 끝내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관계의 균열은 선명할수록, 균열 이전의 결속 역시 선명해야 한다. 사랑의 시작이 비어 있을 때, 사랑의 끝 역시 다소 성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글/공연∙뮤지컬 평론가 김소정

제4회 국립극장 젊은공연예술평론가상 장려상 수상
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전공 석사 졸업 및 박사 수료

뮤지컬을 중심으로 공연예술 연구와 평론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 <아르떼>에 ‘김소정의 무대 밖 뮤지컬’을 연재하고 있으며, 이외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터그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이올라오스〉
2026.06.21.-09.06. 예스24아트원 3관
제작 (주)섬으로간나비 / 천성진 / 연출 박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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