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여성의 신체에서 벗어나, 존재가 되다
오랜 시간 동안 대개 임신 가능한 그리고 임신한 여성의 몸은 성스럽게 간주되어왔으며, 생명의 잉태라는 성스러운 사건 속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은 모두 부가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더불어 난임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는 여성에게는, 부정적인 시선이 자연스레 따라왔으며 여성은 자신이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정상적인 여성’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했다. 즉,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보부아르의 말처럼 말이다. 이렇게 여성의 신체에 부과된 이미지는 무용수에게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 무용수에게는 소위 전통적으로 말해지는 ‘여성성’을 극도로 드러낼 수 있는 여리여리하면서도, 비쩍 마르고, 우아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강요되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공연계에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고, 기존 무대에서 재현되던 여성의 모습에 물음표를 던지며, 여성의 주체성을 찾아내고 부각하고자 했으며,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분리해 한 명의 독립적인 주체자로서 위치시키고자 했다. 이런 흐름 속, 안무가 김보라는 자신의 난임 시술 경험을 기반으로 기존에 여성의 신체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려 여성의 신체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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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단장 겸 예술감독 김성용)의 신작 <내가 물에서 본 것 What I sense in the matter>은 현대무용 안무가 김보라가 3년 전 난임 시술을 받았던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다. 보조생식기술(ART,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ies)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서 기술과 몸의 관계를 탐구하며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과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몸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김보라를 중심으로 구성된 제작진이 오랜 기간 리서치와 세미나를 거치며 작품을 완성했고, 이 중심에는 김보라의 보조생식기술 경험이 있었다. 그는 몇 차례에 걸친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느낀 몸에 대한 위치와 의심은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고, 몸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낯선 공생 속에서 ‘무한히 변화하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기서 말하는 ‘물’은 마시는 ‘물(water)’이 아니라, ‘물질(matter)’를 의미한다.
김보라는 2013년 자신이 창단한 프로젝트 무용단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통해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며 세계 무용계에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 왔다. 대표작으로 <꼬리 언어학>(2014), <소무>(2015), <무악>(2018) 등이 있으며, 22개국에서 공연했고, 현대무용계에서 한류를 이끄는 인물로 평가된다. 김보라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작업을 아름답고 우아한 몸짓을 하는 여성이 아닌,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괴이한 몸짓과 같이 기존의 여성 무용수에게서 기대되었던 몸짓과는 다른 춤을 선보여왔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저는 기괴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신비함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기괴함이나 괴이함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하죠. 그건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낯선 아름다움일 거예요.”라는 생각을 내비친 것처럼, 기존의 익숙했던 미감에 도전장을 던지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김보라는 몸의 탐구로부터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춤으로 시간예술을 말하는데, 특히 몸의 물리적 세계와 초월적인 실재를 관계짓는 존재론적 안무와 포스트휴머니즘, 페미니즘 관점의 무한히 변하는 몸과의 관계성에 대해 연구의 시간을 갖고 있다. 더불어 김보라의 춤은 그 자신에게서부터 출발하여 사회로 확장되어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여성의 신체 다시 보기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여성의 신체에서 벗어나, 존재가 되다 2 9996 25397 3255](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9996_25397_3255-334x500.jpeg)
보조생식기술 앞에서 여성의 몸은 더 이상 인격적 주체로서의 몸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시험관 시술이 행해지는 하나의 대상(혹은 장소), 그리고 성공 여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물질로 전락한다. 이를 표현하듯, 무대 위에 오른 무용수들은 한 명의 무용수로서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마치 하나의 물질과 같은 모습이다. 무용수의 의상은 우연성에 의해 결집되어진 여러 세포들이 결합되어 있는 양상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반복되는 결합과 분리는 생명의 탄생을 위해 유기적으로 계속해서 결합하려는 세포를 연상시킨다. 이 과정에서 무용수의 신체는 철저하게 대상화되며, 이들의 주체성은 사라진다. 그렇기에 무대 위에 오른 여성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의 젠더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들은 모든 것이 거세된 상태에서 단지 물질 혹은 존재로만 존재하게 된다.
여성과 남성의 몸으로 구분되어 기존의 관습대로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과 남성성을 드러내고,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마치 컨택즉흥에 가까울 정도로 정리되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즉흥성과 우연성에 의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신체를 보인다. 이는 곧 인간 개념에서 벗어나 물질의 개념으로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 개념 하에서 중심은 인간이며, 이때, 인간은 오이디푸스적인 구조와 가부장제하에 남성, 백인, 이성애자로 표상되는 보편적 인간 개념에 국한된다.
김보라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체계하에서 규정되어 온, 어쩌면 비인간에 해당했던 여성의 신체를 해방하며, 들뢰즈가 말한 ‘동물-되기’의 개념과 같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무대 위 무용수의 몸은 젠더에서 벗어나 단순히 물질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들은 독립 개체로써 서로 분리되었다가 결합하는 행동을 계속해서 함으로써 ‘인간’의 표상을 띄고 있는 것보다는, 여성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세포’들의 활동으로 읽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은 브라이도티의 여성 주체 재정의와도 상통된다. 브라이도티는 여성 주체를 재정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주체성이 지닌 육체성의 뿌리를 재평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여성주의는 신체의 물질성을 존재론적 기반으로 삼아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여성 주체를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김보라는 여성 육체성의 뿌리를 ‘생명이 잉태되는 성스러운 곳’이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기까지 여성이 겪어야 하는 수많은 변화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녀에서 여자, 여자에서 엄마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를 조망한다.
해체된 익숙한 음악으로 느끼는 낯선 신체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여성의 신체에서 벗어나, 존재가 되다 3 9996 25393 3058](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9996_25393_3058-334x500.jpeg)
소음에 가까운 음악은 이를 더욱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처음 극이 시작되는 순간 대형 셀로판지에 무용수들이 몸을 비비고, 셀로판지를 날카롭게 뜯는 소음과 같은 소리에서 출발해 초인종 소리, 전화벨 소리와 같은 일상의 소리, 그리고 클래식 음악 등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들려온다. 이 모든 소리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으로 조작되어 파편화되어 공간에 흩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음악은 기존에 사유했던 혹은 경험했던 것을 낯설게 인식하고 감각하게 함으로써 이 작품이 새롭게 표현하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렇게 기술에 의해 해체된 익숙한 소리는 현대음악의 의미와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무조음악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음악은 기존의 화성과 같은 음악적 규칙을 파괴했는데, 이는 아름다운 음악이 황폐하고 끔찍한 사회상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존의 음악 규칙을 따르지 않고, 음들을 해체해 만든 현대 음악이 암울한 사회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본 공연에서 또한 낯설게 다가오는 친숙한 소리는 기존의 이미지에 새로운 심상을 부여한다. 즉, 이렇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소리(음악)를 통해 여성의 몸이 실시간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절망,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표현된다. 이 과정에서 음악(또는 소리)은 무대 위 무용수들의 행동 혹은 춤이 진행되는 동안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배경음악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춤과 독립된, 또 하나의 다른 개체로 존재한다.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여성의 신체에서 벗어나, 존재가 되다 4 9996 25396 3227](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9996_25396_3227.jpeg)
더불어 계란을 사용한 연출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리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어느 순간 한 명의 무용수가 계란 한 판을 머리에 이고 나온다. 그러고 나서 한 명의 여성 무용수가 날계란을 무작위로 집어 무대 위에 무작위로 난사하기 시작한다. 탁, 톡, 툭… 각 계란이 날아가는 방향, 속도 등에 따라 각 계란이 깨지는 소리는 다양하다. 고요한 무대 위에 계란이 무대 바닥과 부딪혀 깨지는 소리만이 생생하게 들린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앞서 각기 다르면서도 동일하게 움직이는 컨택즉흥과 같은 움직임이 주가 되었던 것과 같이, 우연성이 더욱 된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시술의 실패를 보여줌과 동시에 계란이 깨지는 소리는 마치 실패의 순간마다 좌절한 그녀의 탄식 혹은 비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이러한 연출은 이 작품의 주제가 ‘시험관 시술’이 행해지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생명의 탄생은 과연 아름다운 것일 뿐인가?’하는 질문을 가감 없이 던진다. 2022년 한국의 신생아 10명 중 한 명은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날 정도로 한국에서 보조생식기술은 만연해 있다고 한다. 난임 클리닉과 보조생식기술은 생명이 잉태되기까지 여성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수천 가지를 넘어 수만 가지의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실제로 겪는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혹은 경험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만 이야기하고, 생명 이태와 출산은 단지 아름다운 것으로만 사회적으로 포장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김보라가 실제 겪은 자전적 이야기에 기반한 만큼, 대상화된 신체의 움직임, 그리고 심지어는 이질적이고 불순한 것으로까지 느껴지는 움직임을 통해 이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여성의 신체에서 벗어나, 존재가 되다 5 9996 25395 3157](https://saicriticism.com/wp-content/uploads/2026/06/9996_25395_3157.jpeg)
그렇기에 이 작품은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게 된다.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를 불편감이 올라오며, 극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어딘지 모를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 중 일부는 “극을 보는 동안 이유 없이 너무나도 불편하고 불쾌해서 다시는 이 작품을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는가? 바로 남성 권력에 의해 규정지어졌던 여성의 몸을 해체하고 다시 바라본 행위에서 파생된 존재로서 신체의 등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하며,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지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현실과 상상의 간극이 큰 경우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지만 말이다. 이런 불편함의 이면 속 본 공연에서 김보라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시험관 시술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누군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치유와 위로를 전한다.
듣기 좋은 음악, 보기 좋고 아름다운 춤만이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안무가의 자전적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창작진의 수많은 고통과 상처, 치열한 고민과 자료 등이 합쳐져 만들어진 무용 <내가 물에서 본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더 나아가 무언가를 원하지만, 신체적으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들에게 ‘몸의 움직임’, 즉 춤을 통해 관객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더불어, 젠더에 상관없이 여성 관객과 남성 관객 모두에게 임신, 그로 인해 변화해 가는 여성의 몸, 사회적인 인식과 달리, 과정으로서 여성의 몸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사고 틀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본 글은 초연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