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비둘기 〈빨간 피 터지는 고백〉 열차 999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On My Way
전장으로 향하는 자의 노래가 뚝섬플레이스 로비에 흐른다. 객석이 채워지는 동안 이 노래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무언가를 예비한다. 이 공연이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원작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아는 관객이라면 이미 어떤 아이러니를 감지할 것이다. 원숭이 빨간 피터의 이야기는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 아니라 자유를 포기함으로써만 가능해지는 적응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On My Way는 그 서사를 다른 방식으로 써 내려가겠다는 힌트다.
성북동비둘기는 원작을 재료로 삼아 연극을 만들어왔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운명과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주제를,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소인국과 거인국, 공중에 떠다니는 섬의 이미지를,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는 노동이라는 소재를 추출했다. 텍스트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을지언정 주제만큼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놀이판이 성북동비둘기의 연극인데, 〈빨간 피 터지는 고백〉은 그 반대를 향한다. 인간을 닮아버린 원숭이의 이야기, 보고 형식, 그리고 자유의 역설까지 공연은 원작의 구조와 텍스트를 충실히 따르지만 그것을 통해 완전히 다른 곳을 가리킨다. 카프카의 피터가 문명과 교양의 구조를 폭로하는 자였다면, 김현탁의 피터는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고백하는 자다. 외피는 카프카의 것이되 지향은 오롯이 김현탁의 것이다. 텍스트에 가까이 다가가 주제를 완전히 전복한 이 역설이 〈빨간 피 터지는 고백〉을 성북동비둘기의 20년 역사에서 유독 낯선 작품이자 가장 사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연출가로 20년을 살아온 그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직접 올랐다. 김현탁에게 창안·연출이라는 수식어는 공연의 컨셉에서 대본, 무대와 소품, 의상과 음악까지 모든 층위가 오직 한 사람의 감각에서 발원한다는 선언이었다. 그 선언이 이번에는 배우의 몸까지 포함한다. 〈빨간 피 터지는 고백〉의 재료는 카프카만이 아니다. 김현탁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것들을 무대 위에 쏟아내어 온기가 식을세라 관객에게 직접 건넨다.

빨간 피 터지는 고백
뚝섬플레이스의 피터는 김현탁이 살아온 시간을 차례로 통과한다. 혼자였던 어린 김현탁을 달래준 〈은하철도 999〉, 아버지의 목소리로 몸에 각인된 〈전선야곡〉, 일본 문화 개방 이전 청년들 사이에서 암호처럼 유통되던 영화 〈러브레터〉의 서정, 광고업계에 몸담았던 시절의 흔적이 녹아든 소주, 5.18 계엄 방송과 전장의 포격 소리까지. 이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의 몸 안에서 충돌하고 공명하면서 그의 신체는 동시대의 집단 기억을 담는 그릇이 된다. 텔레비전이 키운 아이, 광고를 만들던 청년, 아버지의 노래와 일본 영화를 몸에 새긴 사람. 단 하나의 탈출구를 따라 걸어온 그 모든 모방과 흡수가 지금 이 무대 위의 몸을 만들었다. 뚝섬의 피터는 구속에서 가능성을 찾아 교양을 전복시켰다.
그렇다면 이토록 사적인 고백 앞에서 관객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빨간 피 터지는 고백〉이 관객에게 요청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인식이다. 공감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을 다시금 확인할 뿐, 확장에 이르지 못한다. 타인과 만나지 못하는 나는 자라지 못한다. 내 눈앞의 낯선 존재가 거쳐온 낯선 시간을 함께 통과하면서 그가 어떤 교양을 강요받아 왔는지, 어떤 출구를 찾아 헤매었고 어떤 창문을 닫아버렸는지를 직면하는 것. “저는 그저 보고를 드렸을 뿐입니다.”라는 피터의 말이 가치판단 없는 차가운 진술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대한 담백하고도 단단한 긍정으로 들리는 것은, 관객이 그러한 인식의 자리에 도달했을 때다.

Don’t Stop Me Now
원숭이 가면을 벗은 피터가 피 터지는 고백을 마무리할 때 프레디 머큐리의 〈Don’t Stop Me Now〉가 공간을 채운다. 선글라스를 끼고 팔짱을 낀 김현탁이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꼿꼿하게 선다. 20년 넘게 다른 사람의 몸을 빚어온 사람이 카프카의 옷을 입고 처음으로 자기 몸으로 선 것이다. 여기는 목적지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지라고, 이 꼬장꼬장한 연극쟁이의 얼굴이 말한다. On My Way는 이렇게 Don’t Stop Me Now로 도착했다.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에 따르면 999는 미완성을 뜻한다. 1000이 되면 철이는 어른이 되고 메텔과도 이별해야 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소년에게 메텔은 청춘이자 꿈이자 자기 안의 환영이었다. “안녕, 메텔. 잘 가요, 안녕.” 하얀 원 안에 선 피터가 하늘을 향해 세차게 손을 흔든다. 연기와 고백의 경계가 이미 지워진 그 손짓에 1000이 되지 않으려는 999의 의지가 응축된다.
번지가 없어져도 문명에 밀려나도 떠나지 않는 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를 떠돌며 구구구 하고 우는 그 새. 성북동비둘기의 999도 은하철도 999도 끝내 도착하지 않는 여정을 산다. 열차 999는 아직 1000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연극 〈빨간 피 터지는 고백〉
2025.11.27.–12.07. 뚝섬플레이스
성북동비둘기 / 원작 프란츠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 창안・연출・연기 김현탁
필자는 성북동비둘기의 상주 드라마터그로 활동하고 있으나, 이 작품의 창작에는 참여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