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적 놀이와 뉴 프론티어의 환상 –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 〈김치찌개 웨스턴: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의 결투〉

연극성, 연극적 놀이
연극은 세련된 가장 놀이(role-playing)일 것이다. 상상으로 채워진 가상 공간에서 ‘~인 체’하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즐기는 예술.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현실의 규범과 질서가 잠시 멈춘 곳, 극장. 그렇다면 극장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자유의 공간이 아닐까?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은 ‘희극적’이라는 수식어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전복, 위반, 아이러니 등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날린 한 방이 홈런으로 관객석을 강타할 때 가능하다. 바로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의 연극 〈김치찌개 웨스턴〉은 아르코소극장에서 홈런을 연타로 날린다.
70분 동안 극은 3막 구조로 펼쳐진다. 1막은 뉴 밀리언 골드타운 소개, 2막은 배신, 3막은 죽음이다. 1막 후, 2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에서나 볼 법한, 인터미션을 “허리 펴세요”라며 제안한 후, 능청스럽게 무대를 정리한다.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는 ‘여러분은 연극을 보고 있습니다’로 대변되는 연극 상황을 무기 삼아, 시간과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더불어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는 무장애 공연(Barrier-free)까지 구현한다. 시각 정보를 위한 동반 관람, 안내 보행, 휠체어석, 접근성 테이블, 음성소개 등 가능한 접근성을 두루 챙기면서 본 팀의 유희가 객석 어디든, 관객이 누구든 즐길 수 있게 준비했다. 공연에 대한 세심한 준비는 공연의 완성도를 자신하는 또 다른 증명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것을 이들은 해낸다.
웃음과 놀이의 세계
작가이자 연출인 조예은은 이 서부극 장르에 김치찌개의 감각을 섞어 풍자와 패러디로 관객을 이끈다. 연출로서 조예은은 1막에서는 마을의 세계관과 갈등, 2막에서는 새로운 인물 J.B와 잭 솔로를 통해 인물의 갈등을 제시하고 3막에서 인물과 갈등을 회수하고 수습하며 러닝타임 70분을 경제적으로 구성한다. 또한 인형극, 그림자극, 실제 배우 장면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작가이자 연출이 서사와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한 후, 적재적소에 제작팀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작품 환경을 구축하고, 그 위에 배우가 자유자재로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강점은 놀이의 속성에 기반한다. 쉴 새 없이 서사의 재미를 장면으로, 동선으로, 오브제로 확장, 변환하고 변주한다.

테이블 두 개, 손가락 인형, 골판지에 그린 무대 소품. 그 사이에서 네 명의 배우, 윤세인(에슐리 퀸즈), 양대은(에드먼드 퀸즈), 권주영(잭 솔로), 최문혁(J.B)은 인형사와 인물, 해설자를 쉴 새 없이 오간다. 이 사이 무대 한편, 악사인 백하형기는 기타 연주로 서부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동시에, 재기발랄한 타악으로 장면의 질감, 톤을 조절한다. 특히 밥주걱과 권총을 들고, 사막의 바람 사이를 난무하는 음성언어와 대사는 ‘구강 액션 활극’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윤세인은 인형사와 에슐리 퀸즈, 말 초코를 오가며 웃음을 배가시킨다. 양대은은 진실을 알고 욕망에 잠식당하는 에드먼드 역으로 극의 어두운 욕망을 드러내며, 최문혁은 총잡이 J.B를 속물근성으로 풀어 희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권주영은 “골드 리버”를 애절하게 외치는 마지막 승리자 잭 솔로이자, “정직”한 관찰자, 목격자, 해설자 역할을 수행하며 장면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한다. 특히 황폐한 간척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잭 솔로의 승리는 간척 사업의 문제, 땅의 주인인 주민들을 상징하며, 작품의 의미를 더한다.
뉴밀리언골드타운과 새만금. 뉴 프론티어의 환상
땅을 정복하고, 확장하며, 개척하고, 개간했던 프론티어 정신의 서부극 신화. 미지의 경계를 스스로 개척해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인간의 서사는 지금 어떤 결과로 남았을까.
웃고 정신없는 사이,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는 ‘새만금 간척 사업’을 장타로 날린다. ‘뉴 밀리언 골드타운’(New Million Goldtown)은 단어 그대로 ‘새만금’이다. 솔저마운틴(Soldier Mountain)은 군산, 골드리버는 금강(Gold River), 사우스폰드 평야(South Pond Plain)는 호남평야로 대응시킨다. 전북의 지리를 스파게티 웨스턴식 세계관으로 통째로 번역한 셈이다. 즉 지역의 현실을 장르 언어로 재가공한 것이다.



희극은 현실의 부조리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와 패러디로 드러낸다. 때문에 비극적 인물과 달리 희극적 인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기꺼이 신념을 포기한다. 희극적 인물의 선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대신 세속적 가치, 현실의 규범, 질서의 한계를 쉽게 뛰어넘는 방법으로 조롱한다. 가치, 규범, 규칙, 질서를 위반하는 희극적 인물의 선택은 어리석은 실수가 되고, 그 선택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뉴 프론티어 신화의 끝이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뉴스를 통해 확인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웃음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극장 문을 나서며 녹차라떼를 주문하는 순간, 뉴 밀리언 골드타운을 다시 떠올리며 멈칫한 것은 기시감이 아닌 현실감이었다. 웃음은 현실을 견디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는 방식이다.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는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으로 그것을 정확히 겨냥했다.
연극 〈김치찌개 웨스턴: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의 결투〉
2026.04.25.–05.03.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 / 작・연출 조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