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컨〈곡예사훈련〉 우리에게는 더 많은 실패담이 필요하다  

로비에 앉아 입장을 기다리는데 안내원의 목소리 대신 귀여운 음악이 객석 입장을 알린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을 입에 넣은 듯 기억이 생생히 살아난다. 어릴 적 열심히 했던 아케이드 게임에서 듣던 그런 음악이다. 화면 속 곡예사는 외줄을 타며 장애물을 뛰어넘고, 사자를 타고 달리며 불붙은 고리를 통과하고, 공중그네에 아슬아슬 매달렸다. 장애물에 부딪히고 불타는 고리에 걸려도, 공중에서 손잡이를 놓쳐 바닥에 떨어져도 곡예사는 말짱하게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무대 위의 세 사람에게 실패는 그렇게 간단히 리셋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컨컨(CONTCONN)의 〈곡예사훈련〉은 시작부터 기대를 무너뜨린다. 화려한 무대의상도 없고 긴장을 자아내는 음악도 없다. 일상복인지 연습복인지 모를 차림의 세 곡예사와 태블릿을 손에 든 공연예술 학자가 등장한다. 예상했던 장면도 바로 오지 않는다. 곡예사들은 실제 연습에서처럼 몸풀기를 시작하고 무대 한 구석에서 지켜보던 학자가 훈련 방식을 비롯한 이것 저것을 묻는다. 곡예사들은 어색하면서도 성실한 목소리로 답하며 훈련을 이어간다. 때때로 학자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대한 설명을 보충한다.

다큐멘터리와 렉처 퍼포먼스의 차용은 완성된 기예가 아니라 그 기예의 밑에 깔린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태도이다. 의상이나 분장, 소품으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대신 몸과 서사로 의미를 생성하겠다는 선택이다. 단편적인 서커스 기예의 나열 대신 서커스로 가는 훈련 과정 전체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컨템포러리 서커스 〈곡예사훈련〉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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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국내 컨템포러리 서커스 씬의 특징은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해외와 달리, 성인이 된 후 매력을 느껴 스스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 세 사람처럼 다른 예술 장르를 거쳐온 이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한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지만 영화를 만들지 않은 사람, 뮤지컬을 전공했지만 뮤지컬을 한 적 없는 사람. 그 우회의 시간이 이들이 서커스를 다루는 방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스물아홉에 스페인 서커스 학교에 입학해 어린이들과 함께 훈련한 이야기, 연봉이 50만 원인데 SNS로 본 기예에 매료되어 80만 원짜리 휠을 해외 구매한 이야기, 외줄 위에서 버틸 힘을 기르려고 10킬로그램의 쇳덩이를 배낭에 넣고 걸어 다닌 이야기를 이들은 참 해맑게도 한다. 공연을 연출하고 에어리얼리스트로 출연한 김준봉은 서커스는 서로 다른 몸과 개성을 존중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서커스를 찾아간 것은 그 성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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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손옥주출연 권해원 김준봉 박상현 손옥 4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오르고 돌고 버티던 곡예사들은 지금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다는 트릭을 하나씩 소개한다. 에어리얼 로프와 에어리얼 실크에서 손을 놓고 공중에서 몸을 회전해 다시 잡는 ‘피루엣’, 슬랙 와이어 위에서 앞뒤로 구르고 온몸으로 도는 ‘풍차돌리기’, 씨어휠을 타고 하늘을 향해 회전하는 ‘백 코인’. “무서워요. 기술연습 하는 게. 그래서 하기가 싫어요.” 씨어휠 곡예사는 이 트릭을 연습할 때마다 가슴이 간질간질해진다고 고백한다. 두렵고 간지러운 순간들이 쌓이면서 훈련은 위험과 부상을 지나 현실과 미래에 포개진다. 서커스 곡예사의 몸에 새겨진 실패의 이야기가 각각의 모양으로 실패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번져나간다.

국내 예술 현장에서는 전통적인 예술 범주로 규정되지 않는 시도를 다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왔다. 김준봉은 지원서에 ‘다원’이라고 써넣으면서 속으로는 이 공연이 굉장히 연극적인 공연일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범주는 물론 중요하지만, 〈곡예사훈련〉이 컨템포러리 서커스냐 연극이냐 다원이냐 하는 물음은 그다지 힘이 없다. 모호한 지점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호한 경계에 놓인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이 공연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범주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있고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향기롭다.

“지금부터 〈곡예사훈련〉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몸풀기에서 컨디셔닝으로 이어졌던 훈련이 드디어 공연이 되는 순간,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막이 내린다. 훈련과 공연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라고 〈곡예사훈련〉은 그렇게 조용히 일러준다. 무대에 남는 것은 멋진 기예도 대단한 서사도 아니다. 실패해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 “꼭 해야 되는 건 아닌데 하고 싶어요”라는 그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성공담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늦게 깨달은 사람, 늦게 시작한 사람, 늦게 도착한 사람, 그래도 계속하고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보고 싶다.

글/ 공연예술평론가 박효경


다원 〈곡예사훈련〉
2026.02.05.–02.07.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컨컨 CONTCONN / 작・연출 김준봉 / 드라마터그 손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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