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권효진의 춤판 <생명의 그물 X 생명의 DNA>] 권효진의 춤, 생명의 근원을 일으켜 합일을 향해 나아가다

4375 13872 4725

메를로-퐁티의 ‘살(la chair)의 철학’은 인간의 신체를, 세계를 마주 보는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같은 살로 엮어 서로에게 스며드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보는 자와 보이는 것, 만지는 손과 만져지는 손이 하나의 살 속에서 가역적으로 포개지듯, 몸은 세계와 분리된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통로다. 그렇다면, 작금의 현대사회에서 한국의 전통 춤은 어떻게 세상과 조우하며, 생명의 근원과 다시 이어지는가? 이 물음에 권효진(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은 <생명의 그물 X 생명의 DNA>(2026.06.10.~2026.06.11., 김희수아트센터 SPACE1)에서 한영숙, 이애주로 이어지는 승무의 춤맥을 잇되, 영가무도(詠歌舞蹈)와 승무, 태평춤을 중심에 두고 국악과 전통의 움직임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며 생명의 근원과 몸의 움직임을 하나로 연결한다. 

한민족(韓民族)은 대대로 스스로를 ‘천손(天孫)’으로 여겨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혈통이 단군으로 이어진다는 신화는 인간을 하늘과 땅 사이에 선 존재로 자리매김했고, 토속신앙인 무속에서 무당은 무굿을 통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잇는 매개자였다. 여기에 태극을 중심으로 한 음양오행의 세계관과 조선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의 전통 사유는 인간을 자연과 우주로부터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존재로 이해해 왔다. 권효진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관계의 세계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기(氣)’를 품은 생명 운동의 본질을 고전의 방식으로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길을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하려 한다. 본 공연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춤의 형식으로 구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명의 그물 X 생명의 DNA’라는 공연의 제목은 단순한 표제 이상이다. 개체와 개체가 그물코로 이어진다는 동양적 생명관(불교의 인드라망 및 연기 사상)과 나선으로 감겨 생명의 정보를 실어 나르는 현대 생물학의 DNA를 한 무대에서 포개려는 야심이 그 안에 응축되어 있다. 천부경(天符經)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 인간을 대우주를 품은 소우주로 노래했듯, 이 공연은 몸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큰 우주의 운행을 다시 살게 하려는 시도다. 

‘하늘의 별’ 영가무도 – 먼지의 노래

KakaoTalk Photo 2026 06 18 17 09 19 004 1
©️권효진 제공

막이 오르면, 춤꾼은 곧바로 춤추지 않는다. 권효진은 가만히 앉아 눈을 감은 채 구음(口音)을 낸다. 움직임에 앞서 소리가 있고, 소리에 앞서 호흡이 있다. 세상과 조우할 준비로서의 이 정지는, 춤이 신체의 기교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더듬어 찾는 행위임을 처음부터 못 박는다. 

영가무도는 김일부(金一夫)의 정역(正易)에서 비롯되어 박상화를 거쳐 이애주로 전승된 한민족 고유의 수련법으로, ‘읊고(詠) 노래하고(歌) 춤추고(舞) 밟는다(蹈)’라는 네 글자가 곧 그 진행의 지도다. 무대는 이 순서를 충실히 따른다. 음·아·어·이·우 다섯 소리를 길게 끄는 영(詠)의 울림과 공명이 차츰 가락으로 이어지고, 가(歌)에 이르러 몸 장단이 일어나면서 맺힌 응어리를 풀고 죽어 있던 마음을 바로 세운다. 이때 익숙한 몸 장단이 일어나면서 맺힌 응어리를 풀고 죽어 있던 마음을 바로 세운다. 이때 (밀양)아리랑 가락이 비상하듯 솟구치는 대목은, 가장 보편적인 민요의 선율을 생명의 진수를 부르는 주문(呪文)으로 되돌려 놓는다. 세계수를 연상시키는 신나무를 세우고 벌이는 무굿의 정경이 여기서 환기된다. 

KakaoTalk Photo 2026 06 18 17 09 20 005
©️권효진 제공

이어 무(舞)의 국면에서 동작은 털고 비비고 씻어내는 정화의 몸짓으로 바뀐다. 정(靜)에서 동(動)으로 전환되며 장단을 타고 신명이 차오르며, 마침내 땅을 밟고 구르는 도(蹈)에 이르러 징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참나(眞我)’를 찾는 절정으로 나아간다. 발이 땅을 디디는 그 순간이야말로, 하늘을 향해 열렸던 소리가 다시 대지로 회수되는 지점이다. 영가무도가 천지인(天地人)으로 거듭나 만물과 하나 되려는 풍류도의 접화군생(接化群生) 정신을 겨눈다는 사실은, 이 장면에서 관념이 아니라 몸의 사건으로 입증된다. 

권효진은 영가무도를 ‘먼지의 노래’라 칭하며, ‘먼지, 미립자의 고주파 진동으로부터 생명의 노래가 울린다’라고 말한다. 소우주인 몸 안의 미세한 떨림이 대우주의 진동과 공명한다는 명제를, 작품은 거대한 장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구음과 그 안에 내재한 기(氣) 혹은 DNA의 미세한 떨림에서부터 시작함으로 설득력 있게 공연의 장을 연다. 

한밝 + 덩~기덕 합 궁~ – 구음이 쌓아 올리는 진동

KakaoTalk Photo 2026 06 18 17 09 19 002
©️권효진 제공

2장은 소리로 기운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핵심은 ‘덩~기덕’이라는 구음에 대한 이애주로부터 이어진 해석에 기반한 권효진의 독특한 관점에 있다. 본래 ‘덩 기덕 덩 더르르르’는 장구와 북의 타격을 입으로 흉내 낸 의성일 뿐, ‘덩’은 강한 박, ‘기덕’은 짧게 이어지는 박, ‘더르르르’는 굴려 흘리는 여운을 가리키는 리듬어다. 이애주는 『주역』의 “부대인자(夫大人者)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한다) 등의 고대 창조론에서부터 시작하여 ‘덩~기덕’에 대한 해석을 내보였다. 권효진에 이에 더해 덩은 ‘우주의 합(合)이며, 그 덕(德)을 쌓고 거듭할수록 생명을 낳아 최고의 선(善)인 복(福)에 이르는 것’이며. ‘기덕’은 덕을 쌓여 비추는 광명이라 보았다. 이는 ‘덩~기덕’이 단순한 악기의 장단을 표현한 의성어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맥박의 활동, 더 나아가 우주 전체 에너지의 흐름까지 확장한 대우주와 소우주의 상동성으로까지 확장된다. 

대일광명((大一光明)을 뜻하는 ‘한밝’은 한민족의 근본이 되는 고유 사상으로 일컬어진다. 무의미해 보이던 소리에 이러한 우주론을 부여하는 작업은 자칫 사후적 의미 부여로 비칠 수도 있으나, 이 해석은 허공에서 솟은 것이 아니다. 『주역』의 오랜 창조론에서 출발해 스승 이애주를 거쳐 권효진으로 이어진 만큼, 그것은 전통이 본래 품고 있던 내재적 의미를 다시 길어 올리는 전승의 작업에 가깝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해석이 스스로의 타당함을 논증으로 입증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교적 토양에서 자란 승무의 이수자인 권효진의 바탕에는 선(禪)의 사유가 깔려 있다. 진리의 말로 세워지지 않으며(不立文字) 몸으로 곧장 깨쳐진다는 태도는, ‘덩~기덕’을 개념으로 설명하는 대신 진동으로 체득하게 하는 이 장의 방식과 정확하게 포개진다. 겹겹이 쌓이는 구음과 타악의 진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개념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몸으로 반응하게 만들며, 공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의 논리를 확보한다. 의미는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진동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연주자들의 구음(嘔吟)이 층층이 쌓이며 만들어낸 진동 위로 자바라가 날카롭게 파고든다. 불교 의식에서 비롯된 자바라의 금속성 울림과 좌고의 깊은 저음이 서로 다른 결의 진동을 교차시키면서, 영가무도의 소리는 더 이상 한 개인의 수행적 발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몸 안에서 시작된 떨림은 악기와 악기를 거치며 확장되고, 개별적 호흡은 집단적 울림으로 전환된다. 이때 생명은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서로를 감응시키는 파동의 관계망으로 감각된다.  

하늘을 향해 추는 춤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도 이 대목이다. 한국 전통의 맥락에서 춤은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을 잇는 매개였고, 그래서 위를 향한 몸짓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기원이자 치유이며 접신이자 신명이었다. 위를 향한 상승의 몸짓은 초월과 자기 극복의 상징 혹은 인간과 세계가 서로 감응하는 통로를 여는 행위가 된다. 춤이 끝나고 손안에 쥐어진 무언가를 권효진이 불어 흩뜨리는 마지막 동작은 이 상승의 정서를 한 호흡에 응축한다. 이 무언가는 하늘을 향해 기도한 자신의 염원이기도 하면서도, 세상과 감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를 날려버리는 것과 같이 여러 맥락에서 읽힌다. 그렇게 1부가 닫히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던 연주자들이 사각의 단으로 올라간다. 원에서 사각으로의 이동은 무대 위 기운의 판이 새롭게 짜이리라는 조용한 예고다. 

완판 승무 ‘생명의 그물’ – 필연 속의 우연

2부의 문을 여는 완판 승무는 이 공연의 절정이다. 권효진은 승무를 ‘생명과 삶을 담아 구체화한 몸짓, 우리 춤의 본질이자 골격이며 정중동(靜中動)의 미와 역동성을 지닌 신명의 춤’으로 정의해왔다. 가장 느린 염불 과정에서 시작해 타령·굿거리·법고로 이어지는 긴 호흡은, 생명이 시작되고 자라며 기운을 쌓아 비우고 다시 태어나는 자연 운행 전 과정을 한 몸 안에 담아낸다. 무대의 표제(승무 완판 (생명의 그물))대로 승무의 ‘판’은 곧 몸판이며, 그 생성과 변화는 축의 생성과 변화는 몸이라는 축의 생성과 변화다. 뒤로는 폭포와 바다를 중의적으로 연상케 하는 영상이 흐른다. 

KakaoTalk Photo 2026 07 01 18 07 10
©️권효진 제공

춤꾼은 자신의 모든 것을 조절한다. 그러나 승무를 추면서 휘날리는 천의 맨 끝, 그 마지막 떨림만은 인간의 의지 밖에 있다. 승무는 이 ‘필연 속의 우연’을 숨기지 않는다. 완벽히 통제된 몸과, 그 몸이 끝내 어쩌지 못하는 천의 여백─이 둘의 공존이야말로 생명의 진실에 가장 가깝다. 뒤에 펼쳐지는 바다 영상이 이러한 양상을 뒷받침한다. 바다는 예로부터 육지와 다른 세계로 인식되어 왔다. 인간은 그 세계를 다스리는 용왕의 존재를 믿으며 바다에 나가기 전 제를 올렸고, 바다는 그렇게 인간이 끝내 통제하거나 온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알고 다룰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해변에 닿는 물결뿐, 깊은 물은 우리의 손 밖에 있다. 생명의 탄생 또한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과 의지가 닿지 않는 여러 부분이 얽히고설키며 일어난다. 이에 권효진은 승무를 통해 의지와 비의지, 통제와 우연이 하나의 춤 안에서 겹치도록 설계해 낸다. 

동시에 권효진은 승무를 추면서 외고무북을 치며 연주자들의 가락 위에 힘 있게 북장단을 얹고, 좌고와 더불어 크게 북의 고동(鼓動)을 울린다. 북의 고동이 갖는 의미는 이 공연의 핵심 상징 중 하나다. 그것은 먼저 심장의 박동이자 삶의 리듬이다. 불교는 ‘두드려(鼓) 법(法)을 전한다’라는 뜻에서 북을 법고(法鼓)라 부르며, 범종·목어·운판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을 이루는 법고는 육지의 뭇 생명을 소리로 제도한다. 더 멀리 거슬러 오르면 북은 주술적 신성을 띤 악기였고, 무당의 북은 신령을 부르는 소리로 여겨졌다. 신화 속에서 북소리는 천둥이자 신의 목소리이며 우주의 리듬이었다─실제로 북소리와 천둥은 저주파 진동을 만들어 멀리 퍼지고 온몸을 울린다는 물리적 닮음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권효진의 북은 단순한 두드림이 아니다. 그것은 심장에서 천둥으로, 다시 우주의 맥박으로 확장되는 진동의 사다리다. 영상이 바다에서 우주로 번져갈 때, 몸 안의 고동과 천체의 운행은 같은 리듬의 다른 크기임이 드러난다. 

판의 울림: 도당 시나위 ─ 즉흥, 그리고 뿌리내림

4장은 ‘도당 그곳에 마음 두어 뿌리 내리다’라는 부제처럼, 축적된 기운을 한자리에 내려 앉히는 타악·기악의 마당이다. 시나위는 정해진 기본 장단 안에서 재즈처럼 즉흥으로 주고받는 음악이며, 경기도당굿은 한강 이남과 서해 일대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굿이다. 무대는 경기도당굿의 기악 선율과 시나위 가락을 연주자들끼리 여러 갈래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즉흥적으로 풀어낸다. 피리가 중심을 잡고 대금·해금·장구·북이 그 위에 얹힌다. 

이 장에서 연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였다. 대금 김선호, 피리 이정훈, 가야금 연지은, 해금 최태영, 꽹과리·좌고 김용하, 장구 송문수는 각각 서로의 선율이 묻히지 않으면서도, 두드러질 수 있는 절묘히 조화로운 지점을 찾아내 온전히 다른 각 악기의 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이정훈의 중저음 구음은 여러 악기가 저마다의 길을 찾아 흘러가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원점을 환기하는 소리였다. 그 울림은 즉흥의 흐름을 붙드는 보이지 않는 축이 되어 음악의 판을 단단히 묶어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히 연주자들의 호흡이 좋았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권효진이 앞선 장들에서 몸으로 구현해 온 생명의 운동 원리가 이 장에서는 음악의 구조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분화되는 선율과 그것을 다시 하나의 흐름을 회수하는 장단과 구음의 관계는 개체와 전체, 생성과 합일을 오가는 공연의 핵심 논리를 음악적으로 재현한다.

KakaoTalk Photo 2026 06 18 17 09 19 001
©️권효진 제공

흥미로운 것은, 음악이 즉흥으로 흩어지는 동안에도 춤은 승무의 미학을 다시 불러온다는 점이다. 어깨로 넘기고 위로 들어 올리며,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뒤에서 앞으로 다시 앞에서 뒤로, 둥글게 둥글게 곡선을 그리다가 수평으로 펴지는 동작들이 승무의 어법을 변주한다. 그리고 이내 영가무도로 회귀한다. 통제된 형식(승무)과 즉흥의 음악(시나위), 첫 장의 근원적 소리춤(영가무도)이 한 장면에서 교차하면서, 공연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스스로 묶어 그물을 짠다. 부제의 ‘뿌리내림’은 이 자기 회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태평춤 ─ 지금 이곳, 만물을 일깨우다

마지막 장은 시선을 우주에서 다시 ‘지금 이곳의 현재 시공간’으로 끌어내린다. 본래 국가무형유산의 정식 명칭은 ‘태평무’이지만, 권효진은 이애주의 명맥을 이으며 ‘태평춤’이라 명명한다. 전반의 움직임은 태평무에 기반하되, 버들가지와 꽹과리, 지전(紙錢)을 차례로 들고 추며 원형을 변형한다. 이 과정에서 꽹과리를 든 춤은 진쇠춤을, 지전을 든 춤은 지전춤의 어법을 끌어들인다. 

KakaoTalk Photo 2026 06 18 17 09 26 001
©️권효진 제공

소리꾼의 소리와 새소리 같은 대금의 청량한 소리와 함께 태평춤이 시작된다. 손에 쥔 것이 버들가지에서 꽹과리로, 다시 지전으로 바뀔수록 권효진의 몸짓은 점점 커지고 격해진다. 이 세 사물에는 각기 다른 기원이 담겨 있다. 버들가지는 정화와 생명력, 넋을 인도하는 매개이고, 꽹과리는 진쇠춤의 맥락에서 공동체의 흥과 풍요, 액을 막는 벽사(辟邪)를 부른다. 지전은 호남 씻김굿에서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어 극락왕생하도록 비는 축원의 도구다. 정화 – 벽사 – 천도로 이어지는 이 배열은 우연이 아니다. 혐오와 차별, 갈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부정한 것과 나쁜 감정을 털어내고, 합(合)하여 조화를 이루자는 메시지가 사물의 교체를 따라 단계적으로 고조된다. “현재 세상의 생명들이여 일어나 숨 쉬어라, 이곳저곳 모두 함께 일어나라”라는 외침은, 영가무도에서 길어 울린 우주적 생명론을 끝내 동시대의 윤리적 호소로 착지시킨다. 

나선의 닮음, 그리고 남는 질문

다섯 장을 지나온 자리에서 이 공연이 붙잡으려 한 것은 분명하다. 대우주 천체의 나선형 운행 궤도가, 소우주인 몸판의 굴신과 주름, 비틀기와 탄성의 운동성과 완벽히 닮아 있다는 포착. DNA의 이중나선이 과거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새것을 향해 감겨 오르듯, 권효진의 춤은 전승된 형식을 보존하면서 그것을 오늘의 생명 운동으로 다시 감아올린다. 인간이 별의 먼지로 빚어졌다는 현대 천문학의 통찰과 먼지의 고주파 진동이 몸에 새겨진 고유의 리듬을 불러낸다는 그의 명제가 여기서 만난다. 영가무도라는 가장 오래된 소리춤과 DNA라는 가장 현대적인 생명 언어가, 결국 ‘부분 속에 전체가 깃든다’라는 하나의 원리로 수렴하는 것이다. 

KakaoTalk Photo 2026 06 18 17 09 28 004
©️권효진 제공

본 공연의 성취는 뚜렷하다. 권효진은 영가무도·승무·도당 시나위·태평춤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의 레퍼토리를, 단순히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순환-회복-치유로 이어지는 하나의 일관된 생명 서사로 꿰어냈다. 소리·노래·춤·장단의 가무악(歌舞樂) 합일과 몸·마음·정신의 통합이라는 이애주로부터 전승된 ‘한밝춤’ 관점이 다섯 장 전체를 관통하면서, 전통은 박제된 형식이 아니라 지금 숨 쉬는 생명체로 무대 위에 되살아난다. 서두에서 던진 물음─전통 춤은 어떻게 세상과 조우하며 생명의 근원과 다시 이어지는가─에 대해, 그는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라고, 관념이 아니라 떨림과 호흡, 그리고 디딤과 함께 자신만의 통찰로 응답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이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한 천으로 엮어내듯, 권효진의 몸은 하늘과 땅, 생명의 근원과 동시대의 세계를 한 호흡 안에 포갠다. 무당이 굿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을 매개했던 그 오래된 자리에, 그는 춤추는 몸을 다시 세운다. 먼지의 노래에서 시작해 우주의 춤으로, 그리고 끝내 ‘함께 일어나 숨 쉬자’를 통해 이곳의 부름으로 돌아오는 이 여정은, 전통 춤이 여전히 살아 있는 매개일 수 있음을 몸으로 증명한 한 편의 사유였다.  


2026 권효진의 춤판 <생명의 그물 X 생명의 DNA>
2026.06.10~2026.06.11 김희수아트센터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