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빅 마더〉당신은 선택하는가, 선택당하는가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사용자의 취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해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OTT 플랫폼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고,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소비 패턴을 예측하며, 지도 서비스는 이동 경로를 최적화한다. 이처럼 데이터 기반 인터페이스가 일상을 조직하는 시대다. 그러나 선택의 편의성은 곧 은폐된 통제의 형식이 되기도 한다. 서울시극단의 〈빅 마더〉(멜로디 무레 작, 이준우 연출)는 바로 이러한 빅데이터 시대의 통제 메커니즘을 전면에 내세운다.

친절한 알고리즘의 시대, 빅 마더
빅 마더(Big Mother)는 극 중 실리콘밸리 기업 ‘헌드레드 몽키’가 개발한 빅데이터 프로그램으로, 엄마처럼 세심하고 다정하게 돌봐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의 감시가 권위주의적 강압에 기반했다면 이 작품이 상정하는 현대의 감시는 돌봄과 편의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문제는 이 친절함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 선택은 이미 프로그래밍된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
작품은 2016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데이터 스캔들을 모티프로 한다. 페이스북 사용자 약 8,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무단 수집해 맞춤형 정치 광고로 여론을 조작했던 이 사건은, 극 중 ‘빅 마더’ 프로그램을 통해 연극적 서사로 재구성된다.
〈빅 마더〉속 뉴욕 탐사의 기자들은 미국 대선 스캔들을 추적하지만, 이들 역시 데이터 권력이 설계한 정보 체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빅데이터 권력 자체보다 그러한 권력 앞에서 저널리즘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딥페이크로 조작된 스캔들 영상과 정보의 홍수 속에 진실은 속수무책으로 침몰한다. 조작된 데이터가 국가 최고 권력을 선출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정당성 역시 데이터 권력 앞에서 위태로운 기반 위에 놓인다.
뉴미디어 판옵티콘의 작동 방식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이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피감시자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근대적 감시 모델이었다면, 〈빅 마더〉가 다루는 감시는 보다 은밀하다. 오늘날의 감시는 강압보다 편의와 선택의 형식으로 내면화된다. 광고나 영상 추천, 기록 수집은 편리함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지만, 그 이면에는 선별적 개입과 조율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사용자는 감시당한다고 느끼지 않은 채, 스스로 감시를 선택한다.
〈빅 마더〉는 이러한 뉴미디어 판옵티콘의 구조를 서사 차원에 머물지 않고 무대 형식으로 번역한다. 전반부와 후반부, 수미상관으로 제시된 호텔 장면에서 쿡과 줄리아가 노트북이나 휴대전화의 GPS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 네트워크가 이미 우리를 ‘선별’하여 ‘추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극 중 대통령의 미성년자 섹스 스캔들에서 사용된 딥페이크 영상은 결국 정보 권력 뒤에 그 데이터를 조작하는 인간이 있음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빅 마더〉가 뉴미디어 판옵티콘의 체계를 단순한 디스토피아적 경고로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준우 연출은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논리 자체를 무대의 리듬과 공간 구성 속에 체현한다. 이는 미디어 권력이 작동하는 인터페이스의 논리를 무대 형식․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유리벽의 투명함, 촘촘히 분할된 장면전환, 스크린을 통한 영상 중계와 무대 현실의 병치는 빅데이터 시대의 조작과 진실을 추적하게 만드는 형식적 장치로 기능한다.

투명한 감시 세계의 무대화
무대를 둘러싼 유리벽과 스크린은 모든 상황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감시 체계를 시각화한다. 이는 무대 상황을 실시간으로 노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무대는 뉴욕 탐사 사무실, 휴게실, 호텔, 로즈의 집, 줄리아의 집, 헌드레드 몽키 사무실 등 여러 공간으로 분할, 중첩, 병렬 배치된다. 인물들은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조명 역시 공간 분할에 적극적으로 복무한다.
〈빅 마더〉의 무대는 고정된 장소를 재현하기보다 정보가 병렬적으로 흐르는 네트워크 구조처럼 기능한다. 관객은 하나의 장면에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시선을 이동하며 정보를 추적하게 된다. 이때 관객은 능동적으로 장면을 선택해 보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그 시선의 경로는 연출이 배치한 공간과 동선에 의해 유도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빅 마더>의 형식적 성취가 드러난다.
이준우 연출은 약 60여 개의 장면을 속도감 있게 배치한다. 빠른 장면 전환과 병렬적 공간 구성은 디지털 알고리즘의 추천 방식을 연상시키며, 관객의 지각 자체를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전환한다. 이처럼 〈빅 마더〉는 디지털 환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그 시스템의 질서인 유도와 개입의 감각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든다. 이는 곧 이 작품이 비판하는 통제의 감각을 관객의 지각 경험 속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데이터를 선택하는가? 아님 데이터에 의해 조율되는가?
사실 우리는 매일 스스로 행동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무엇을 볼지, 살지, 갈지 결정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의 클릭은 매 순간 기록되고, 저장되며, 한두 번의 검색조차 개인 맞춤 추천과 예측 경로의 토대가 된다.
〈빅 마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한 시각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알고리즘의 논리를 무대의 형식 속에 이식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 인식 자체를 흔든다. 관객은 공연을 보는 동시에, 자신 역시 무대 밖 일상에서 이미 설계된 선택 구조 위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결국 〈빅 마더〉가 겨누고 있는 것은 뉴미디어 판옵티콘의 위험성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 인식 자체다. 이 감각이 씁쓸한 이유는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미 데이터의 개입과 유도가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당신은 선택하는가,
아니면 선택당하는가,
지금 당신의 선택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글/ 공연평론가・연극학연구자 홍서아
—
연극 〈빅 마더〉
2026.03.30.–04.25. 세종M씨어터
서울시극단 / 원작 멜로디 무레 / 연출 이준우
